버스 현장에서 부는 바람
최규화/ <작은책> 편집부
올 한 해 동안 전국의 여러 일터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애 썼지만, 그 가운데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을 한 이들을 꼽으라면 나는 버스 노동자들을 꼽고 싶다.
<작은책> 안건모 편집장이 버스기사 시절에 쓴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에도 잘 나와 있듯이, 버스 현장은 어용 노조의 뿌리가 워낙 깊고 사업주와 지역 권력의 결탁이 강해서 민주 노조가 거의 발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남도’를 중심으로 버스 현장에 민주 노조 바람이 불고 있다. <작은책> 2010년 3월호 ‘일터 탐방’에서 대한관광리무진 노동자들을 소개한 바 있는데, 뒤이어 전북 지역에서는 19개 버스 회사 가운데 11곳에 민주 노조가 세워졌다. 그리고 12월 8일부터는 민주 노조를 지키기 위한 연대 파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민주 노조 소식은 광주에서도 들려 왔다. 바로 회사가 만들어진 지 64년 만에 최초의 파업을 앞두고 있는 금호고속(금호산업 고속사업부)이었다. 금호고속은 소속 노동자가 2,300여 명, 보유 버스가 1,200여 대나 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운송 기업이자, 재벌 그룹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기업이다.
12월 1일 아침, 금호고속 노동자들을 만나러 광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공교롭게도 내가 탄 버스도 금호고속이었다. 출발과 동시에 “아름다운 기업 금호고속과 함께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하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세 시간 반 뒤에 듣게 될 이야기는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즐거울지 기대(?)가 됐다.
광주고속터미널 가까이에 있는 운수노조 버스본부 금호고속지회(이하 지회)의 ‘아지트’에서 지회장 선종오 씨(43)와 마주 앉았다. 지회는 주택가 골목길에 있는 자그마한 상가 점포를 지회 사무실로 쓰고 있었는데, 회사 안에 지회 사무실을 두지 못하는 데에는 까닭이 있었다.
금호고속에는 지금 노조가 둘이다. 하나는 35년 전에 만들어진 어용 노조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올해 7월 30일에 설립된 민주노총 산하의 금호고속지회다. 회사는 이미 노조가 있기 때문에 지회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광주지방법원은 10월 13일 “금호고속지회는 (복수 노조가 아니라) 산업별 노조에 해당”하므로 지회의 단체 교섭 요구에 응하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회사는 요지부동으로 지회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회사 안에 지회 사무실을 두지 못하고 있다.
“제가 금호고속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데, 그동안 노조에서 어떠한 형태든 총회를 한 번도 개최한 적이 없어요. 단협 승인 투표든, 파업 찬반 투표든, 지부 규약 개정이든. 임금 협상을 누가, 언제부터 하는지도 몰랐어요. 타결돼도 노조에서는 공고도 안 합니다. 회사 노무팀에서 공고를 내거나 지역 뉴스에 협상 결과가 나오면 ‘아, 임금 협상이 이렇게 됐구나’ 하는 거죠.”
금호고속에는 기사들만 1,800여 명이 있는데 노조 지부장을 20명의 대의원이 간접 선거로 뽑아 왔다. 그리고 광주와 서울에 분회가 있는데 광주 분회장은 광주 대의원들이 뽑고 서울 분회장은 서울 대의원들이 뽑는 게 아니라, 광주 7명, 서울 13명의 대의원들이 광주와 서울의 분회장을 같이 뽑았다. 한국과 일본의 국회 의원들이 모여서 한국 대통령도 뽑고 일본 총리도 뽑는 셈이다. 절차상으로도 문제가 있지만, 이 방법으로 늘 ‘회사가 원하는’ 지부장과 분회장이 선출됐다는 결과가 더 문제다.
선종오 씨는 2007년에 노조에서 징계를 받았다. 그 전에는 대의원 선거 때 후보가 자기 정견이나 공약을 밝히기보다는 같이 술 마시고 “한 표 부탁한다” 하는 게 전부였단다. 선종오 씨는 그해 대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자신의 생각이 담긴 선전물을 뿌렸는데, 그것 때문에 경고 조치를 받았다. 선거 결과는 낙선.
하지만 2009년 선거에는 광주분회 대의원 7명 가운데 선종오 씨를 비롯한 5명이 이른바 ‘민주파’에서 나왔다. 하지만 또 이어지는 반전. 당선되자마자 노조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5명 모두한테 ‘당선 무효’ 판결을 내렸다. 이번에도 이유는 허가받지 않은 선전물을 뿌렸다는 것이다. 5명은 바로 조합원들의 성금을 모아서 소송 비용을 마련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고, 지난해 5월에 승소했다.
“6월에 저희가 대의원 회의를 열자고 해서 예산을 확 깎아 버렸죠. 분회장 판공비 같은 것. 그리고 쓰고 남은 돈이 좀 있어서 조합원들한테 똑같이 얼마씩 나눠 주기로 하고. 그랬더니 이놈들이 우리를 징계하겠다고 안건을 올리는 거예요. 그래서 퇴장해 버렸죠. 일곱 중에 다섯 빠지고 둘 남으면 정족수 미달로 회의는 무산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남은 두 명이 다섯 명을 징계했어요. 허허허. 정말 어처구니가 없죠.”
선종오 씨는 제명됐고, 다른 4명은 노조에서의 권리를 무기한 빼앗는 무기 정권에 처해졌다. 노동자들은 제 손으로 뽑아 놓은 대의원들을 노조에서 두 번이나 ‘목을 쳐 버리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노동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뽑은 대의원들을 인정하지 않는 노조를 거부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광주분회 35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서 7월에 새 노조, 금호고속지회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금호고속 노동자들이 노조에 바라는 것은 뭘까? 일단은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금호고속 노동자들이 운전대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하루에 보통 10시간에서 길게는 15시간. 보통은 7~8일씩, 길게는 12일까지 연속으로 일한다. 금호고속은 주5일근무제 적용 사업장이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5일을 일하면 2일을 쉬게 해야 한다. 그런데 주말도 없고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니 새벽이든 심야든 낮밤을 바꿔 가면서, 승객을 삼사십 명씩 태우고 고속도로를 시속 백 킬로미터씩 달리는 버스를 하루 종일 운전해야 하는 것이다.
고속 노선을 타는 기사는 보통 하루에 서울에서 광주까지 세 번을 운행한단다. 나 같은 사람은 서울에서 광주까지 차를 몰고 한 번만 갔다 와도 몸이 녹초가 돼서, 휴게소를 두세 번씩 들러도 졸음이 쏟아진다. 그런데 그 길을 밤낮으로 하루에 세 번씩 오가고, 그렇게 7~8일 동안 쉬지 않고 운전을 하다니. 내가 서울에서 광주로 올 때도, 그렇게 일하는 기사님이 운전하는 버스를 탔다고 생각하니 순간 아찔했다.
“기본급이 56만 800원입니다. 최저 임금이 안 되죠. 여기다 ‘킬로 수당’을 더해서 임금을 받습니다. 그런데 제가 근로기준법 지켜 가며 한 달 20일 만근하고 110만 원 받았습니다. 킬로를 더 타야 먹고사니까 하루에 15시간도 일하고 연속 12일 동안 안 쉬고 일하고 그러는 거죠. 첫차가 새벽 네 시 반, 막차가 새벽 두 시인데, 낮밤이 어디 있어요. 계속 피로에 찌들어 있는 거죠. 사고 안 나는 게 이상한 겁니다.”
사고가 나면 바로 징계 또는 해고를 당한다. 사망 사고는 잦지 않지만 접촉 사고 같은 작은 사고들은 자주 일어난다. 사고가 나면 기사들은, 자기 돈으로 사고를 처리하거나 보험으로 처리하고 회사에서 징계를 받거나 둘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물피(물적 피해)가 약 1,500만 원 이상 나오면 해고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로 자기 돈으로 사고를 처리하는 쪽을 선택하고 만다. 노동 시간을 늘려서 사고 위험이 높아져도 회사는 손해 볼 일이 하나도 없다. 어차피 사고가 나면 기사가 책임질 거고, 안 그러면 자르면 그만이니까.
연속해서 7일을 일했는데 다음 날도 또 일을 시킨다. 피곤해서 운전을 하기가 힘들다고, 쉬고 싶다고 하면 회사는 징계를 내린다. 그렇게 해서 올해 7월에 선종오 씨는 해고됐고, 한 명은 승무 정지 한 달, 또 다른 한 명은 승무 정지 석 달의 징계를 받았다. 임금을 줄 때는 운행 시간 사이사이에 있는 대기 시간을 노동 시간에 포함시키지 않으면서, 징계를 할 때는 대기 시간에 노조 활동을 했다는 것을 걸고넘어졌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노동 시간을 법대로 줄여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는 것, 사고나 노조 활동 때문에 해고당하지 않도록 징계 규정을 개선하자는 것이었다. 그동안 어용 노조는 이런 요구를 외면해 왔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새 노조인 지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회의 앞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지회는 회사에 9번이나 단체 교섭을 요구하고 법원의 판결도 받았지만, 회사는 지금껏 지회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11월 19일 지회는 파업 찬반 투표를 했고, 조합원의 94퍼센트가 찬성했다.
하지만 회사의 대답은 또다시 ‘징계’였다. 지회는 “민주 노조 사수! 노동 기본권 사수!”라는 구호가 적힌 리본을 제복에 달고 일하는 ‘투쟁’을 했다. 그것을 빌미로 회사는 23명의 노동자들한테 승무 정지 20일의 징계를 내리고, 노동자들의 집으로 “사규 위반 경고장”을 보냈다.
“회사의 탄압이 심하니까 사실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긴 해요. 그런데 더 단단해지고 있어요. 리본 단 것 때문에 징계 떨어지고 할 때, 실제로 징계가 떨어져도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기우더라고요. 더 단단해져요. 그런 것 보면 자신감이 생기죠.”
지회는 앞으로 시한부 파업과 부분 파업에 들어가고, 그 뒤에는 전면 파업까지 벌일 계획이다. 금호고속 노동자들이 실제로 파업에 들어간다면, 내가 작은책 창원 모임에 갈 때 탈 버스가 두 시간에 한 대로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노동할 권리와 내가 안전하게 고속버스를 타고 여행할 권리는 다르지 않다. 이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고 내가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다면, 하루 이틀 전에 버스표를 예매하는 그 작은 불편쯤이야 참을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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