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자, 여기서!(<작은책> 2011년 2월호)
최규화/ <작은책> 편집부
‘살아온 이야기’에 연재되고 있는 황인오 선생의 글 덕분에 <작은책> 독자들에게 광산 노동자들의 삶은 멀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황인오 선생의 글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30년 전의 이야기. 그 사이 수많은 광산들이 문을 닫고 광산 노동자들의 수도 줄어들면서 광산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은 자칫 먼 옛날의 역사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30년 전 황인오 선생이 땀 흘리던 바로 그곳에는 지금도 여전히 탄을 캐고 나르고 고르며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북항쟁의 그날처럼, 행복하게 일할 권리를 외치며 지하 750미터 갱 속에서 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 말이다. 지난 1월 7일 저녁,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태백권광산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았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태백경찰서가 있는, ‘묘한’ 위치에 사무실이 있었다.
“옛날에는 미성년자고 뭐고 그런 게 없었어요. 여기 말로 ‘쫄딱구뎅이’라 카는데, 그런 작은 탄광에서는 국민학생들도 일을 시켰어요. 덩치만 있으면, 탄만 캐 낼 수 있으면 되니까. 제가 열세 살 때부터 일했는데 그때는 월급으로 쌀 한 가마니를 줬습니다. 벌써 30년도 더 됐죠.”
금위수 씨의 이야기다. 이날 만난 노동자들은 모두 대한석탄공사 산하의 장성광업소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이다. 장성광업소에는 900여 명의 정규직 노동자들과 17개의 하청 업체에 소속된 426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20.7년. 주로 원청에서 퇴직한 사람들이 다시 하청으로 일하기 때문에 하청 노동자들의 근속 연수는 대개 30년에 육박한다.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합니다. 보통 직장인들은 중간에 점심시간이 한 시간 있잖아요. 우리는 막장에 들어가면 점심시간이 없어요. 먼지 태배기(투성이)에 앉아서 도시락밥만 딱 묵고 또 일하는 거지.”
25년째 탄광에서 일하고 있는 정회석 씨의 말이다. 이들이 일하는 곳은 지상에서 수직으로 750미터, 거기서 다시 수평으로 2,600미터를 들어간 진짜 ‘막장’이다. 지열이 높은 곳은 30도가 넘고 산소량이 희박해서 보통 사람들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숨이 차고 땀이 줄줄 흐를 정도란다. 하루 종일 목욕탕 한증막 속에서 탄을 캐고 밥을 먹는 셈인데, 어떻게 그런 일을 20년이 넘게 할 수 있는지 상상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탄광 일은 건강을 해치기 쉽다. 진폐나 규폐 등의 폐 질환과 흔히 ‘골병’이라고 하는 근골격계 질환뿐만 아니라, 희박한 산소량 때문에 심폐 능력에 이상이 생기거나 좁은 지하 공간에서 반복되는 소음 때문에 청력에 이상이 생기기도 한다.
“제가 4년 전에 여기(장성광업소 하청 업체) 들어왔는데, 그때 신체 등급을 ‘A특’을 받았어요. 탄광은 사람을 뽑을 때 신체검사를 꼭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한쪽 귀가 멀었어요. 신경이 마비된 거죠. 보통 한 3년 정도 일하면 어떤 질병이든 한 가지씩은 얻고 나온다고 보면 돼요.”
태백권광산노조의 위원장인 원정호 씨의 말이다. 하지만 원정호 씨는 산재 신청을 하지 못했다. 일을 그만둘 작정이 아니면 산재 신청은 꿈도 못 꾼단다. 왜냐하면 이들의 근로 계약은 대개 1년 미만. 다른 직종의 하청 노동자들이 그렇듯이 이들도 근로 계약이 끝나면 그때마다 해고됐다가 새로 취업해야 한다. 그런데 아파서 병원에 있겠다는 사람을 취직시켜 줄 사장님이 어디 있을까. 다친 것도 억울한데, 잘리지 않으려면 산재 신청도 하지 않고 제 돈으로 치료받아 가면서 아파도 참으면서 일해야 하다니, 해도 해도 너무한다.
원정호 씨가 보여 준, 석탄공사의 ‘외주 용역 특수 조건’이라는 문서를 보니 기가 막힌다. “공사에 재직 중 소행 불량자, 장해 해고자, 공사를 상대로 제소한 자를 채용하고자 할 때는 사전에 ‘갑(대한석탄공사)’과 협의하여야 한다.(제6조 2항)” 한마디로 “다친 사람, 고분고분 말 안 듣는 사람 일 시키지 마라” 하는 소리인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공기업이 대놓고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임금 이야기를 들어 보니 더 심각하다.
“원청 노동자들 2010년 평균 연봉이 4,300만 원이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제일 많이 받는 사람이 2,200만 원, 제일 적게 받는 사람이 900만 원입니다. 보통 하청 업체에 1년에 120억 원이 정도가 내려오는데, 그 중에 47퍼센트만 임금으로 나가요. 절반도 넘는 돈이 세금, 경비, 그리고 바지사장들 몫이죠.”
원정호 씨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연봉 900만 원을 받는 노동자의 근속 연수는 몇 년일까? 놀랍게도, 17년이다. 20년, 30년, 길게는 40년씩 같은 자리에서 일한 사람도 있지만 마찬가지다. 1년마다 해고와 재계약을 반복하는 하청 노동자들한테 근속 연수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이들은 태백권광산노조를 만들고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김기수 씨의 표현으로는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 것이었다. 황인오 선생의 글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어용 노조의 뿌리가 깊은 광산 지역에서 민주노총을 상급 단체로 하는 노조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노조의 깃발이 오르자 426명의 하청 노동자들 가운데 120여 명이 가입서를 냈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린 것은 해고였다. 지난해 12월 21일,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원정호 씨와 6명의 노동자들은 “오늘 일을 마무리하고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얘기를 받았다. 계약 해지는 11월 20일에 이미 통보받았지만 2010년 업무가 종료되는 12월 24일까지는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래서 원정호 씨와 세 명의 노동자들은, 다른 갱에서 일하던 노조의 간부한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리고 그 길로 지하 750미터 갱 속으로 들어가서 농성을 시작했다. 아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목숨이 달린 일이죠. 저희 집에 대학생이 세 명인데, 백수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들어왔는데, 처음에는 당황했어요. 아무 사전 준비도 없이 들어가서 나오지 말자고 하니까.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농성을 시작하니까, 죽기 아니면 살기다 싶더라고요. ‘못 이길 거면 나오지 말자. 죽자. 여기서’ 이런 각오로 했어요.”
“그런데 솔직히 우리 네 명만 살자고 할 것 같으면 어느 사장 바지를 붙들고 늘어져도 취직은 할 수 있어요. 우리 네 명만 살자고 할 것 같았으면 그리 안 했다꼬. 426명 전부 살자고 들어간 거지.”
농성에 함께한 금위수 씨와 정회석 씨의 이야기다. 산소도 희박하고 고열과 습기, 먼지로 가득한 막장에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막장에는 심지어 화약까지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농성이 사흘째 되던 23일 오전, 지역구 국회의원 보좌관의 중재로 교섭이 열렸다. 위원장 원정호 씨는 남은 노동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막장에서 나왔다.
하지만 바로 그때 석탄공사는 남아 있던 세 명의 노동자들을 끌어냈다. 사흘간의 막장 농성으로 힘이 빠질 대로 빠진 노동자들은 건장한 원청 직원 15명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교섭을 하다가 강제 해산 소식을 원정호 씨는 즉시 교섭을 중단하고 다시 막장으로 들어가겠다고 완강하게 저항했다. 결국 석탄공사는 하청 노동자 426명의 고용 승계를 약속했다.
극적인 투쟁으로 일단 해고를 막아 내기는 했지만 아직도 이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아 보인다. 지난해에 시작한 체불 임금 문제가 남아 있고, 단체 협약과 임금 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정규직 노동자의 80퍼센트 선까지 생활 임금을 보장받고, 1년마다 거듭되는 해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 것일 뿐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일터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밥그릇 싸움’이라 욕하지만 밥그릇 싸움만큼 정직한 싸움은 없다. 왜냐하면 밥그릇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일하지 않아도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제 밥그릇을 채우는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탄가루로 가득한 지하 750미터에서 20년을 일하면서 10개월짜리 근로 계약을 하고 1년에 900만 원을 받는 사람이 얻고자 하는 밥그릇은 다름 아닌 ‘인간의 밥그릇’이다. 이들의 싸움조차 ‘노조 이기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 용감한(?) 자가 있다면 김기수 씨의 말을 전하고 싶다.
“제 일은 비정규 일일지 몰라도, 제 인생은 비정규 인생이 아닙니다.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다시 생기는 일이라고 비정규직이라 하지만, 인생은 한번 없어지면 영원히 끝이잖아요. 인생에는 비정규 인생이 없습니다. 제 인생을 인간답게 살고 싶은 것, 제 바람은 그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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