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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해고자가 아니라 복직 대기자입니다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0. 11. 30.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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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해고자가 아니라 복직 대기자입니다!

   최규화/ <작은책> 편집부

 

 

  <작은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거짓말하지 않으면서도 즐겁고 희망찬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작은책>은 어둡고 우울하고 서글픈 이야기만 한다’고, ‘모르면 좋았을 이야기를 해서 괜히 마음을 찌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고민은 더 깊어진다. 특히 독자들한테 그런 인상을 심어 주는 데, 내가 쓰는 ‘일터 탐방’이 큰 구실(?)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그렇다.

  벌써 1년. 열두 번째 글이다. 그동안 나는 일터 탐방에서, 노동자들이 나락으로 떨어져 힘들게 싸우고 있는 현실을 거짓 없이 전하고 싶었다. 동시에 그네들이 현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은 현실이 주는 절망보다 더 큰 가슴속의 희망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동안 이 목표를 얼마나 이루었나 생각하면, 부끄러울 뿐이다. 하지만 올해의 마지막 글에는 희망이라는 낱말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됐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드디어 공장으로 돌아간다. 지난 11월 1일,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와 기륭전자 사측은 열 명의 노동자들을 복직(합의서에는 ‘고용’이라고 표현됐다)시키고 모든 고소 고발을 취하하고 농성을 중단하기로 한 합의안에 서명했다. 자그마치 1895일. 문자 메시지 한 통으로 해고 통보를 받고 쫓겨난 지 6년 만에 일터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11월 2일 저녁 서울 가산동 옛 기륭전자 공장 앞, 이제 제 임무를 다하고 철거를 눈앞에 두고 있은 컨테이너 농성장에서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을 만났다. 원래 ‘투사’의 이미지와는 달리 웃는 모습이 뜻밖에 좀 귀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웃음이 더욱 시원했다. 제일 궁금한 것은 합의서 조인식을 하면서 기륭전자 최동렬 회장과 악수를 할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는 거다.

  “조인식 하러 가서 앉아 있을 때는 사실 좀 섭섭한 마음이 있었죠. 그동안 같이 투쟁했던 사람들이 다 돌아가는 게 아니라 남은 열 명만 돌아가게 됐다는 것 때문에요. 그래서 눈물이 울컥 나오기도 했죠. 조인식 끝나고 악수할 때는 ‘잘해 보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웃으면서 악수를 했는데 표정이 살짝 ‘오바’가 돼서 <조선일보>에는 너무 활짝 웃는 사진이 나왔더라고요. 하하하.”

  계속 웃으면서 인터뷰를 하니 오히려 내가 적응이 안 된다. 지금이야 이렇게 웃지만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김소연 분회장의 말대로 “또 한 번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첫 번째 30일, 두 번째 90일, 그리고 이번에는 얼마나 오래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세 번째 단식 농성을 시작한 지 사흘 만에, 사측은 옛 공장 부지를 개발하겠다고 포클레인을 앞세워 밀고 들어왔다. 노동자들은 포클레인 바퀴 밑에 드러누웠고, 포클레인 위로도 올라갔다. 10월 15일, 아무도 계획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포클레인 농성’이 시작된 것이다. 26일에는 설상가상으로, 진짜 ‘끝장 투쟁’이 뭔지 보여 주겠다면서 함께 농성하던 송경동 시인이 포클레인에서 떨어져 발뒤꿈치가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이번에 정말 부담이 컸어요. 다시 단식을 한다는 것도 그렇고, 생각지도 못한 포클레인 농성도 그렇고. 하지만 그보다 사측 부담이나 사회적인 부담이 더 클 거라고 생각했어요. 부지 개발을 맡은 시공사도 여론이 부담스러워서 기륭전자 쪽에 계약 조건으로 노사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는 얘기도 있어요. 사회적으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공감대를 만들어 내기는 했지만 덕분에 주위 분들을 많이 안타깝게 했죠.”

  천만다행으로 그 안타까움은 보름 만에 해소됐다. 이번 승리가 더욱 반가운 것은 법정에서 진 싸움을 투쟁으로 이겼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6월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제기한 부당 해고 소송에 대해 대법원은 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이대로 싸움이 끝나는 건가’ 하고 크게 실망하고 걱정했다. 하지만 노동가수 박준의 노래 제목처럼 ‘질긴 놈이 승리한다’는 말은 틀림이 없었다. 법원의 판결 이후로도 흔들림 없이 ‘질기게’ 버티며 싸운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지금의 기쁨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당장 일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회사의 경영 사정 때문에 1년 6개월의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기 때문이다. 또 유예 기간을 길게는 1년 6개월까지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기간에는 회사가 노동자들한테 다달이 생계비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아쉬운 부분은 처음의 200여 명의 조합원 가운데 지금 남아 있는 열 명만이 복직한다는 것.

  “조합원들한테 미안하죠……. 보고대회 할 때 조합원들이 왔거든요. 하루를 일하고 다시 나오더라도 같이 복직하겠다고 약속했던 분들도 계시고……. 그래서 그날 눈물이 많이 났어요. 조금 전에도 전화가 왔어요. 투쟁 초기에 같이했던 사람인데 기억하냐면서, 신문 기사 봤다고, 너무 고생했다고 울면서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저도 목이 메이는 거죠……. 그런 분들 생각해서라도 앞으로도 비정규직 투쟁 열심히 해야죠.”

  눈물을 참아 가며 잠깐잠깐 이야기를 멎었다 이어 가는 김소연 분회장. 인터뷰할 때는 안 그랬는데 글을 쓰면서 녹음 파일을 다시 들으니 나도 잠깐 목이 메인다. 애써 삼킨 김소연 분회장의 눈물이 주는 이 오묘한 느낌을 말줄임표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죄송하고 안타깝다.

  이번 합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가장 기뻐했을 사람들은 다름 아닌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가족들이 아닐까 싶다. 김소연 분회장은 언론 매체와 인터뷰를 자주 하면서도 가족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덕분에 ‘피도 눈물도 없는’ 투사의 이미지가 더 강해지는 것 같기도 한데, 합의를 하고 나서 가족들과는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엄마가 먼저 전화하셨어요. ‘고생했다’ 딱 한마디. 하하하. 그래서 그냥 ‘어’ 했어요. ‘집에는 언제 오냐?’ ‘조만간.’ 대화가 늘 이래요. 사실은 표현을 안 할 뿐이죠. 서로 마음만 아프고 그러니까…….”

  김소연 분회장은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축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연신 “고맙습니다” 하고 전화를 받다가 한번은 “아! 축하합니다”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김소연 분회장이 한층 들뜬 표정으로 전해 준 소식, 동희오토도 내일 오전에 합의서 조인식을 한다는 것이었다.

  무턱대고 기뻐하기에는 조금 조심스러웠다. 다음 날인 11월 3일 아침, 정말로 조인식이 열리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와 동희오토 하청 업체 대표들이 합의한 주요 내용은 해고자 아홉 명을 복직시키고 금속노조 활동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6개월에 세 명씩 순차적으로 복직한다는 점과 기아자동차로 직접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아홉 명 모두 복직한다는 점, 노조 활동을 인정한다는 점은 큰 성과였다. 이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됐기 때문이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본사 앞에 있는 농성장을 치우기로 했다고 해서 다음 날인 11월 4일 아침에 바로 찾아갔다. 농성을 하다 하다 지쳐서 치우는 것은 봤어도, 이렇게 신나게 농성장을 치우는 모습은 처음 본다. 동희오토 투쟁에 가장 큰 힘이 됐던 연대 단체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손을 거들러 와 있었다. 지난달 일터 탐방 취재 뒤로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이백윤 지회장도 싱글벙글, 조금은 들떠 보였다.

  “오늘부터 해고자가 아니라 복직 대기자가 됐어요. 축하 전화를 백 통은 받은 것 같은데, 아직 실감이 잘 안 나요. 전원 복직이라는 요구는 절대 안 들어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마냥 기뻐하고 있지는 않아요. 다시 현장에서 다른 노동자들을 모아 내는 싸움은 여기서 한 싸움보다 훨씬 힘들 거니까요. 어쨌든 저희들 투쟁이 다른 하청 노동자들의 싸움에도 좋은 선례로 남으면 좋겠어요.”

  1년 동안 일터 탐방을 쓰면서, 독자들이 느끼는 그 어두움과 우울함과 서글픔을 몇 배나 먼저 감당해야 했다. 꼭지 제목은 ‘일터’ 탐방이지만 실제로는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 ‘길바닥’을 탐방한 적이 더 많다. 그 현장에서 한 번, 글을 쓰면서 또 한 번 그네들의 이야기에 담긴 슬픔과 서러움, 쓸쓸함과 노여움을 감당해야 했다. 글을 쓰고 나서도 그 무거운 감정에서 헤어 나오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신나고 즐겁다. 이번 글을 읽고 독자들이 느낄 희망과 기쁨을 내가 먼저, 훨씬 생생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일터 탐방을 쓰면서 1년에 딱 한 번이라도 이런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랐는데, 마지막 호에서 극적으로 이뤄지다니! 내년에는 진짜 ‘일터 탐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공장으로 돌아간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일터를 한번 탐방해 볼까?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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