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통닭 한 마리의 행복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0. 10. 26. 11:34

본문


   통닭 한 마리의 행복(<작은책> 2010년 11월호)
   최규화/ <작은책> 편집부

 


  “9차 하청 가족이에요.” 동희오토 해고자 주원 씨네 이야기다. 무슨 소린가 하니, 주원 씨가 2차 하청 노동자고 어머니는 청소 용역 2차 하청 노동자, 아버지는 한진중공업 5차 하청 노동자라서 합이 9차라는 것이다. 지금 주원 씨는 해고돼서 농성을 하고 있고, 어머니는 대장암 말기로 투병 중, 그리고 아버지는 10월 초에 산업 재해로 돌아가셨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이런 이야기가 아주 극단적인 예가 아니라는 것. 이제는 누구나 내 가족 가운데 한 명은 비정규직인 시대를 살고 있다.  
  100퍼센트 비정규직들만 일하는 공장, 현대기아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꿈의 공장’, 동희오토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지난여름부터 석 달이 넘게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본사 앞에서 먹고 자며 싸우고 있다.
  이들을 만난 것은 10월 6일. 마침 바로 전날에도 경찰이 농성장을 침탈해서 천막을 빼앗아 가고 함께 농성하던 퀵서비스노조 노동자 한 명을 연행해 갔다. 농성장 꼴이 정말 무참하다. 부서진 피켓들이 나뒹구는 가운데 두 동강난 스티로폼 깔개를 깔고, 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이백윤 지회장과 마주 앉았다.
  생산직 930여 명이 일하는 동희오토는 기아자동차의 ‘모닝’을 만드는 하청 공장이다. 모닝은 2004년부터 지금까지 백만 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다. 그런데 이 차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기아자동차 소속도 아니고, 동희오토 소속도 아니고, 동희오토 내 17개 하청 업체 소속이다. 그것도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완성차 공정 전체를 하청화한 것도, 생산직 노동자 100퍼센트를 비정규직으로 채운 것도 동희오토가 최초다.
  “처음에 들어와서는 이 회사의 구조를 이해를 잘 못해요. 한 삼 개월 다녀야 이해가 돼요. 심지어는 이삼 년 다니고도 자기가 정규직인 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떤 집에서는 자기 아들 기아자동차에 취직했다고 동네 앞에 플래카드를 걸기도 했대요.”
  이들의 노동 강도는 기아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세 배에 가깝다.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쉴 틈 없이 일하다 보면 6개월에 평균 10킬로그램 정도는 살이 빠진단다. 하지만 그렇게 일하고도 휴일이면 돈 몇만 원 더 받자고 또 특근을 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임금이 기아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반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달 내내 일하고 받는 돈이 이런저런 수당을 몽땅 더해서 평균 160~170만 원 정도다.
  동희오토를 정몽구 회장의 ‘꿈의 공장’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처럼 노동자들을 적은 돈으로 오래 부릴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 다른 까닭은 365일 언제든지 정리 해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해고된 노동자들은 모두 110여 명. 해고의 방법은 다양하다. 일단 모든 노동자들이 계약직이기 때문에 재계약을 안 하면 그만이다. 또 다른 방법은 아예 하청 업체를 하나를 폐업해 버리는 것이다.
  ‘바지사장’을 교체하고 회사 이름을 ‘대왕’기업에서 ‘대명’기업으로 바꾸는 식으로 하청 회사를 폐업하고, ‘잘라 내고 싶은’ 노동자들을 잘라낸 뒤 다른 노동자들은 재고용한다. 물론 이 과정은 서류상으로만 이루어질 뿐, 노동자들은 그저 어제 일하던 라인에서 오늘도 일할 뿐이다. 그때마다 잘려 나간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민주 노조 활동을 했다는 것.
  “어용 노조가 있었는데, 저도 대의원이었어요. 처음엔 별로 한 것도 없어요. 칫솔 살균기 설치하자 뭐 그런 얘기나 했죠. 그런데 임금 협상을 하는데, 최저 임금이 280원이 올랐는데 노조가 임금 인상 요구안을 230원으로 올리는 거예요.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최저 임금 인생 좀 벗어나 보자고 얘기하고 다니다가 찍혀서 해고됐죠. 삼 년 일하면서 지각, 결근 한 번 안 했는데 민주 노조 소리 한다고 자른 거예요.”
  그때가 2008년. 노조를 바로 세우겠다는 노동자들을 회사는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평소에는 “하청 업체의 고용 문제와는 무관하다”는 동희오토 관리자가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찾아와서 아내한테 “당신 남편 신세 망치기 전에 노조 못하게 하라”고 회유하기도 하고, 아파트 맞은편 동 복도에 숨어서 망원경으로 감시하기도 했다. 해고자들과 밥이라도 먹은 노동자는 다음 날로 관리자한테 불려 가서 세 시간씩 면담을 해야 했다. 공장 안의 노동자들이 같이 싸워야 하는데, 해고자들은 공장 출입도 못하게 막아 버렸다.
  “별 짓 다 했어요. 라인 공사할 때 인부로 위장해서 들어가기도 하고, 밤 열두 시에 뒷산을 넘어서 들어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동차 트렁크에 숨어서 들어가기도 했어요. 그렇게 들어가서 식당에서 밥 먹는 노동자들한테 유인물도 뿌리고 하다가 끌려 나오곤 했죠.”
  여덟 명의 해고자들이 현대기아자동차 본사 앞으로 온 것은 지난 7월 12일. ‘진짜 사장’인 정몽구 회장한테 문제 해결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무기한 노숙 농성에 들어갔는데 그날 밤 이들을 찾아온 것은 정몽구 회장이 아니라 용역 깡패들이었다. 그자들은 해고자들이 잠을 못 자게 침낭을 빼앗고, 자동차 전조등을 비추며, 사이렌을 울려 댔다. 심지어는 밤 열두 시에 “건물 외벽을 청소하겠다”며 물대포를 뿌리기 시작했고, 전조등과 사이렌, 물대포는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는 다음 날 새벽까지 꼬박 7시간 동안 계속됐다.
  용역 깡패의 만행은 날이 가도록 점점 더했다. 해고자들한테 모래를 뿌리고 얼굴에 침을 뱉았다. 포르노 음성을 녹음해서 해고자들한테 틀고, 수십 명이 고작 대여섯 명의 해고자들을 빙 둘러싼 채 욕을 해 댔다. 우산으로 찔러서 한 해고자는 손바닥이 찢어지기도 했고, 이런 모습을 촬영하던 기자를 때려서 귀가 찢어지게 하기도 했다. 그자들을 대형 버스를 둘레에 주차해서,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해고자들한테는 본사 앞에서 집회 한번 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이미 사측에서 본사 건물 둘레에 집회 신고를 해 버렸기 때문이다. 보통 대기업들은 노동자들이 회사 앞에서 집회를 못하게 하기 위해 용역을 고용해서 경찰서 앞에 세 명씩 줄을 세운다. 한 사람이 하루치씩 집회 신고를 하고 가면, 네 번째로 줄을 선 노동자들은 72시간을 꼬박 기다려야 집회 신고 한 번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삼교대로 와서 집회 신고 내고 요 짓거리 하는 놈들 월급이 삼백이래요. 저희 여름 작업복이 이천몇백 원짜리예요. 재질이 안 좋아서 피부가 쓸리고 아주 힘들어요. 그걸 한 사람당 두 장씩 주는데, 그놈들 한 놈 월급만 작업복 개선하는 데 투자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동희오토 해고자들이 본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하자 현대기아자동차는 본사 둘레 여섯 군데에 집회 신고를 선점했다. 보다 못한 노동자들은 관할 경찰서인 서초경찰서에 60여 명이 몰려가서 집회 신고하겠다고 텐트 치고 앉아서 기다렸다. 그랬더니 경찰이 중재에 나서서, 정문 앞을 제외한 다섯 군데 가운데 두 군데에는 해고자들이 먼저 집회 신고를 할 수 있고, 정문 앞에는 한 달에 다섯 번 집회 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지난 7월 22일 대법원에서는 사내 하청 노동자라도 2년 이상 일하면 원청 회사의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동희오토 노동자들한테도 희망이 생겼다고 기뻐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당장은 그렇지도 않았다. 그 판결과 관련해서 노동부에서 불법 파견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선정된 29개 표본 사업장 가운데 동희오토는 없었다. 노동부에서 대답한 까닭은 “비교 대상군인 정규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쭉 듣다 보니 내가 다 맥이 풀린다. 하루같이 맞고 뺏기고 잡혀가면서 싸워 온 것도 참 힘들었을 텐데, 기대했던 대법원 판결까지도 비껴가다니. 힘 빠지지 않냐고, 지치지 않았냐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오히려 싸워 보니 별 것 아니구나 싶어요. 물 뿌리고 모래 뿌리고 유치하게 나오는 걸 보니까 오히려 자신감이 생겨요. 그래도 이 앞에서 농성하니까 여론도 움직이고 사측도 궁지에 몰리니까 유치하게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한숨만 내쉴 상황은 절대 아닙니다.”
  이들의 소원은 여름날 퇴근하고 와서 자식들 손잡고 집 앞에 통닭 한번 먹으러 가는 것, 자주는 못해도 월급날에는 온 가족 외식 한번 하는 것이란다. 이런 사람들을 몇 달째 ‘거리의 투사’로 몰아대는 이 나라, 이들 가족에게 통닭 한 마리의 행복조차 주지 못하는 G20 의장국 대한민국이 부끄럽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