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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퀵서비스를 소개합니다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0. 7. 2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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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익퀵서비스를 소개합니다

 

 

  몇 해 전에 퀵서비스 오토바이와 트럭이 부딪치는 교통사고를 본 적이 있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20미터쯤 튕겨 나갔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는지 꼼짝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날 만큼 충격적이었다. ‘퀵서비스는 정말 위험한 일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퀵서비스에 대한 이미지도 비슷할 것 같다.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난폭 운전자’라는 말이 떠오를 것이고, 퀵서비스를 자주 쓰는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급한 사람들’이라는 말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지난 7월 3일 토요일 오전, 서울 충정로에 있는 퀵서비스노동조합 사무실에서 퀵서비스 노동자들을 만났다. 사무실 앞에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퀵서비스노동조합’이라는 간판이 있지만, 사실 이 노조는 법적으로 인정은 받지 못했다. 택배기사나 화물차기사들처럼 이들도 이른바 ‘특수 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노조의 조직국장을 맡고 있는 이재옥 씨와 나눈 첫 이야기도 역시 ‘노동자냐 아니냐’에 대한 것이었다.

  “업주들은 오로지 오더(주문) 중계만 하고 수수료만 챙기는 겁니다. 우리보고 하도급 사장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는 업주들의 업무 지시를 받거든요. 그 업체의 거래처 유지 업무까지 다 우리가 합니다. 실컷 일은 시켜 먹으면서 우리가 권리를 요구하면 ‘너희는 우리 직원이 아니라 협력 업체 사장이다’ 하는 거죠. 정말 뱃속 편한 장사에요.”

  우리가 퀵서비스를 부르면 업체에서는 기사들이 가지고 있는 단말기로 오더를 전달한다. 그 주문을 먼저 ‘찍는(오더에 응답하는)’ 기사가 그 일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물건을 배달하고 요금을 받으면 업체에서 25퍼센트를 떼 간다. 하지만 배달 요금과 사납금(수수료)를 정하는 것은 기사들이 아니라 업체다. 기사들은 배달 일뿐만 아니라 업체 홍보와 거래처 관리까지 실질적인 업무 지시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런데도 업주들은 기사들보고 자기네 직원이 아니라고 하도급 사장님이란다.

  그걸 핑계로 업체는 기사들의 복지나 노동 환경에 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기사 한 사람이 한 달에 300만 원을 벌면, 업체에 수수료로 75만 원을 떼 준다. 그리고 기름 값, 밥값, 오토바이 수리비, 보험료, 통신비(단말기와 핸드폰 요금), 교통 범칙금, 사고 치료비 등 모든 비용을 기사들이 부담한다. 업체에서는 십 원 한 푼 나오는 것이 없고, 오히려 기사들한테 출근비를 받거나, 눈비가 오고 날씨가 궂어서 기사들이 결근하면 벌금을 물리기도 한다. 그렇게 이것저것 떼고 나면 130만 원이 남는다.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보다 떼이는 돈이 더 많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사무실에 앉아서 전화 받고 오더 ‘때리는(전송하는)’ 직원 하나만 있으면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다 보니,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후발 업체들이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흔히 하는 방법은 요금 할인, 이른바 ‘덤핑(헐값 판매)’과 현금 쿠폰 발행이다. 만 원 받던 요금을 7, 8천 원으로 낮춰 부르거나, 중국집에서 자장면 30번 먹으면 탕수육 한 그릇 주듯이 쿠폰을 발행해서 20번, 30번 이용하면 현금으로 얼마를 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중국집에서 쿠폰으로 탕수육 먹는다고 요리사가 탕수육 값을 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퀵서비스는 현금 쿠폰 비용을 업체가 아니라 기사들이 부담한다. 그리고 덤핑을 해서 요금을 할인해도 수수료는 그대로다. 덤핑에 대한 부담도 고스란히 기사들의 몫인 것이다. 아무리 손 안 대고 코를 풀어도 분수가 있지, 지금까지 쭉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 대목에서는 정말 욕이 나온다.

  “지금 한 업체의 오더만 받아 가지고는 턱도 없어요. 기사들이 거의 다 단말기를 서너 개씩 차고 일해요. 서너 군데 업체의 오더를 받아야 하루 일당이 겨우 나오는 거예요. 밤이고 낮이고 단말기를 켜 놓고 쫓아다니는데, 그래 봤자 단말기 통신비만 더 나가죠.”

  얼마 전에 다른 잡지사에 마감을 도와주러 갔다가 새벽 1시에 퀵서비스를 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는데, 이제야 이해가 된다.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출퇴근할 사무실도 없다. 어디서든 단말기를 켜면 출근이고, 단말기를 끄면 퇴근이다. 덤핑이다 쿠폰이다 해서 수입은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새벽에라도 단말기를 켜 놓고 있다가 오더가 들어오면 일을 나가야 하는 것이다.

  퀵서비스 노동자들의 연령이나 경력은 참 다양하다. 이재옥 씨는 인쇄소를 하다가 IMF 때 문을 닫고 잠깐 ‘거쳐 가는’ 곳으로 이곳에 발을 들였다고 한다. 이재옥 씨처럼 다른 일을 하다가 잠깐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고, 오토바이 타는 것이 좋아서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이나 손자 사탕 값이나 벌려는 어르신들도 있다. 그러다가 10년 넘게 일하게 되는 사람도 있지만, 퀵서비스 일을 평생직장이 아닌 아르바이트나 소일거리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퀵서비스 일을 생계 수단으로 삼고 있는 기사들한테는 그네들이 좀 원망스럽기도 하다. 업체에서 터무니없이 낮은 덤핑 요금을 강요할 때 기사들이 아무도 그 오더를 ‘찍지’ 않으면 업체들도 마구잡이 덤핑은 못할 텐데, 그네들은 직업의식이 약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다 받아서 한다. 그러다 보니 덤핑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퀵서비스 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하루에 열 몇 시간씩 일해도 일당 맞추기가 어렵다.

  노동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사고가 날 확률도 높아진다. 특히 퀵서비스 노동자들의 일터는 ‘도로’이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일단 사고가 났다 하면 어디가 부러지는 것은 기본이고 식물인간이 되거나 그대로 사망하는 경우도 흔하다. 보험이라도 잘 들어 놔야 할 텐데,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보험에 가입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사고 확률이 높으니 보험료도 비싸고, 보험 회사에서도 가입을 꺼리는 것이다.

  “올해 초에도 형님 한 분이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얼마 전에는 한 동생이 강남에서 여의도까지 30분 만에 가야 하는 오더를 받았어요. 자동차 전용 도로를 타지 않으면 도저히 30분 만에 갈 수가 없는데, 그러다가 걸려서 벌금 30만 원을 냈어요. 일주일 벌이가 날아간 거죠. 이혼하고 어렵게 아이들 키우면서 살던 친군데, 그 일 때문에 회의감에 빠져 지내다가 우울증이 와서 결국…… 농약을 마셔 버렸어요.”

  이재옥 씨가 눈물을 참지 못하면서 잠깐 인터뷰가 중단됐다. 사고야 기사들이 난폭 운전을 해서 나는 거니까 기사들 책임 아니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퀵서비스기사들은 폭주족이 아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고,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어 하는 노동자다. 하루에 한 건이라도 더 배달해야만 먹고살 수 없는 처지가 아니라면, 배달 시간에 늦었다고 돈을 떼이거나 욕을 먹지 않는다면, 위험한 줄 알면서도 난폭 운전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적어도, 30분까지 갖다 달라고 한 물건이 35분에 왔다고 퀵서비스기사를 닦달하는 사람이라면, 그네들의 난폭 운전을 욕할 자격이 없다.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그 ‘5분’ 때문에 목숨 걸고 신호를 어기는 거니까.

  그런 현실을 바꿔 보자고 노동조합을 만든 것이 2007년. 재미있는 것이 퀵서비스노조 조합원들은 모두 ‘홍익퀵서비스’라는 업체에 소속된 기사라는 점이다. 홍익퀵서비스는 바로 퀵서비스노조에서 세운 업체다.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혼자 일하기 때문에 서로 만나기가 어렵다. 노조의 위원장인 양용민 씨는 그런 노동자들을 노조로 모을 수 있는 방법은 노조에서 직접 업체를 만들어서 중간착취 없이 조합원들한테 실질적인 이익을 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노조에서 이런 ‘사업’을 한다고 하면 좀 삐딱하게 봐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 실정에 맞게 가야 돼요.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데 하나의 방정식만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저희는 정부한테도 노동자성을 인정 못 받고 있지만, 저희 스스로도 노동자성이 약합니다. 저희가 홍익퀵서비스를 만든 건 ‘얼굴 좀 보자’는 겁니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으면 퀵서비스 노동자들은 만날 수도 없고, 뭉칠 수도 없어요.”

  홍익퀵서비스의 배달 수수료는 15퍼센트. 최소한의 사업 운영비를 빼고는 전부 조합원 복지와 투쟁 사업장 지원에 쓰인다. 현금 쿠폰 발행이나 덤핑 같은 것은 당연히 없다. 홍익퀵서비스의 이런 ‘혁신적인’ 방침이 업계에 소문이 나면서, 노조 조합원 수도 300여 명으로 늘었다.

  전국의 퀵서비스 노동자는 약 17만 명. ‘노동자성 인정’이나 ‘단체 협약 체결’을 내걸고 싸우기에는 아직 힘이 모자라다. 하지만 홍익퀵서비스를 통해 더 많은 노동자들을 모아서 올해 안에 ‘준법 운행 투쟁(오토바이를 타고 하는 도로 행진)’을 한번 하겠다는 양용민 씨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면서 걱정보다는 기대가 더 커졌다.

  6월호에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카센터를 소개했고, 이번에는 또 퀵서비스 노동자들의 퀵서비스 업체를 소개하게 됐다. 간접 광고 아니냐고 문제 제기를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건 ‘간접’ 광고가 아니라, 기자가 직접 대놓고 하는 ‘직접’ 광고니까.

  1599-1252. 서울과 경기도는 어디든 다 간다. 우리가 퀵서비스 노동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연대다.

 

 

  - <작은책> 201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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