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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의 백조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0. 8. 2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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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위의 백조(<작은책> 2010년 9월호)

   최규화/ <작은책> 편집부

 

 

  예전에는 ‘일터 탐방’에서 주로 투쟁 사업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요즘은 꼭 투쟁 사업장이 아니라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일터의 진실을 들려 줄 노동자들을 찾아다닌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어느 곳이나 하루하루가 싸움의 연속이라는 것을 번번이 깨닫게 된다. 이번에 스튜어디스, 여성 항공 승무원 노동자들을 만나기로 한 것도 같은 까닭이다. ‘항공사의 꽃’, 올백 머리에 멋진 유니폼을 입고, 얼굴 예쁘고 키 크고 영어 잘하는 사람들로만 기억되는 그네들의 일상에는 어떤 싸움이 있을지 궁금했다.

  8월 11일 오후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에 있는 한 찻집에서 네 명의 여성 항공 승무원 노동자들을 만났다. 늘 노조 사무실이나, 농성 천막이나, 술집(?)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이런 번쩍번쩍한 곳에서 하자니 적응이 안 됐다. 긴장을 풀기 위해 한두 마디 가벼운 질문을 던졌는데, 꼿꼿하게 ‘각’을 잡고 앉아서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이랬습니다, 저랬습니다 하는 군인 말투로 대답했다. 일할 때의 습관이 몸에 배서 그런가 보다. 하루 종일 그렇게 웃으며 일하려면 보통 일이 아니겠다 싶었다.

  “요즘은 손님들이 무서워서, 저희가 조금만 웃지 않아도 컴플레인(불평, 항의)을 많이 하시거든요. 자기를 챙겨 주지 않았다고, 불친절한 게 아니라 ‘덜’ 친절했다고 컴플레인을 하세요. 그래서 힘들어도 기계적으로 웃게 돼요. 가방을 안 들어 줬다고도 뭐라 하니까 아예 가방도 다 들어 주게 되고.”

  국내선에서 일하는 7년차 박규리 씨의 이야기다. 국내선의 경우 한 승무원이 하루에 네다섯 번의 비행을 하게 된다. 비행기 한 대에 보통 200명 타니까, 하루에 800~1,000명의 승객들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승무원은 승객을 보살펴 주고 짐 들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천 명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승무원의 첫 번째 의무는 승객의 안전이고 서비스는 그 다음이지만, 당장 손님을 많이 끌 수 있는 항공사의 ‘이미지’를 앞세우다 보니 어느새 승무원은 서비스만을 위한 사람이 됐다.

  최근에 그나마 항공 승무원의 ‘노동’이 알려지게 된 것이 ‘감정 노동’이라는 개념이 퍼지면서부터다. 인터뷰도 자연스럽게 감정 노동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저마다 자기가 겪은 일들을 한마디씩 얘기했다.

  “제 또래의 젊은 커플이 앉아 있었는데 제가 지나가니까 남자분이 제 엉덩이를 치시는 거예요. 그냥 저를 부른다고 그런 것 같은데,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더라고요. 제가 사람으로도, 여자로도 안 보이고 그냥 아무렇게 대해도 되는 기계쯤으로 보였나 봐요. 비행기 밖에서 그랬으면 멱살 잡았겠지만(!) 그래도 저희는 화를 낼 수 없잖아요. 너무 당황하고 화가 나서 뭐라고 얘기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요.”

  “비상구 앞에 앉으면 비상 탈출 시에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거든요. 부부가 타셨는데 두 분이 싸웠나 봐요. 제가 협조 부탁드린다고 설명을 했는데 갑자기 남자분이 ‘이 미친 X아, 너 같으면 지금 도와주겠냐!’ 하고 저한테 화를 내시는 거예요. 그래서 뒤에서 막 울었어요. 비행 시작한 지 겨우 3개월쯤 됐을 때였는데 그 일 겪고 나서는 웬만한 일은 그냥 넘어가게 됐어요.”

  7년차 강지영 씨와 박규리 씨의 경험담에 다들 입이 벌어진다. 모두 할 말을 잊은 사이에 16년차 베테랑 승무원인 정용주 씨가 말을 이었다.

“한두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면 그게 내 감정을 다치게 하는 일인지를 모르게 돼요. 감정을 그냥 눌러 버리는 거죠. 그런 것들이 나중에 화병이 되거나 우울증, 단기 기억 상실증 같은 병으로 커지는 거죠.”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노동도 참 힘들지만 육체적인 노동 강도도 상당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했다. 가장 많이 아픈 곳은 손목과 허리, 무거운 것을 많이 들고 오래 서 있기 때문이다. 국내선 여객기의 탑승 제한 시간은 15분. 그 시간 안에 승객들이 짐을 싣고 자리에 앉지 않으면 지연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런 까닭으로라도 승무원들은 알아서 승객들의 짐 정리를 대신 해 줄 수밖에 없다. 한 번의 비행에 200명이 타는데 다섯 명의 승무원이 그 짐을 다 올려 주다 보니 당연히 손목과 허리에 무리가 가는 것이다.

  그밖에도 올백 머리와 진한 화장 때문에 탈모나 피부염이 생기고, 하늘과 땅을 오가며 짧은 시간에 기압차를 겪기 때문에 중이염도 생기고 치아도 약해진다. 식사 시간이 불규칙하고 서서 밥을 먹기 때문에 소화기 질환에 시달리기도 하고, 스타킹에 구두를 신고 오래 서 있다 보면 발가락이 휘거나 하지정맥류, 무좀이 생기기도 한다. 낮밤이 다르고 계절이 다른 곳을 오고 가기 때문에 호르몬 이상으로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거나 생리 중 혈액 순환에 이상이 생겨 임신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저희가 아픈 건 다 누적성이예요. 가방도 들었다 놨다 하고, 식사도 넣었다 뺐다 하고, 드라이아이스도 깨야 하고, 생수통도 날라야 돼요. 회사에서는 가방 하나, 물병 하나 드는 게 뭐가 힘들어서 손목이 아프냐고 하는데, 그걸 365일 들어 보세요. 탈이 안 나겠어요? 저는 허리랑 목에 디스크가 왔어요. 사고도 났고요. 에어포켓이라고 비행기가 날다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거예요. 서 있던 사람은 천장에 부딪혀서 머리도 찢어지고. 신문에 나지 않는 그런 사고가 꽤 자주 있어요.”

  6년 동안 승무원으로 일하다가 산재 판정을 받고 지금은 예약 영업 업무를 하고 있는 한승연 씨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 안에서 서 있는 사람은 승무원뿐이다. 그렇게 크고 작은 사고와 질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그런지 보험 가입 기준을 보면 승무원은 ‘고위험군’에 포함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산재로 처리된 한승연 씨는 참 특별한 경우다. 대부분은 산재가 아니라 공상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항공사에서 산재로 처리된 것은 단 네 건. 하지만 공상으로 처리된 것은 60건이 넘는다. 그나마 공상으로도 처리 못하고 자기 휴가를 쓰는 사람도 많다. <작은책> 지난 호 ‘건강한 일터’에서 소개한, 산재 발생은 많지만 산재 집계는 낮은 대표적인 직업이 바로 승무원이다.

  이렇게 힘들다 보니 일을 오래 하는 사람이 없다. 정년은 55세지만 10년 이상 일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보니, 한 비행기당 한 명씩 있는 매니저급이 되면 ‘독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일을 오래 못하는 데에는 육아 문제도 큰 까닭이 된다.

  “다른 직장처럼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것 같으면 어린이집에라도 맡기죠. 저희는 새벽 5시에 나오기도 하고 6시에 나오기도 하고 비행 일정에 따라 출퇴근 시간이 계속 달라져요. 국제선은 아예 3박 4일씩 나가 있고요. 그런데 아이를 어디다 맡겨요.”

  요즘은 직장 어린이집도 많이 생겼고 항공사는 젊은 여성들이 몇 천 명씩 일하는 사업장이라 직장 어린이집이 있을 법도 한데 왜 없을까 궁금했는데, 정용주 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된다. 그러니 집에서 24시간 아이를 봐 주는 사람이 따로 없으면 도저히 일을 계속할 수 없는 것이다.

  일을 하는 데 제일 개선됐으면 하는 것이 뭐냐고 마지막 질문을 했다. 항공사에서 비행 일정을 대부분 일방적으로 정하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이 둘레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소소한 일상’을 가질 수 없는 게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승무원이라는 일이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고, 그만큼 매력 있는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매일같이 누리고 있는 ‘소소한 일상’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한 것 같기도 하고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승무원이라는 일이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그저 ‘아름다운’ 이미지로만 있는 것 같아요. 이 일이 어떤 역할을 하고 실상이 어떤지는 꼭꼭 감추고 화려한 이미지만 부각시키는 거죠. 하지만 그냥 똑같이 일하고 땀 흘리고 먹고사는 사람들이에요.”

  정용주 씨가, 두 시간 정도 진행된 인터뷰를 이 말로 간단하게 정리해 줬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 한승연 씨가 한마디로 승무원은 ‘물 위의 백조’라고 소개한 것이 새삼 떠올랐다. 물 밖에서 보기에는 우아하고 여유롭지만 물 속에 있는 다리는 쉬지 않고 발버둥쳐야 하는 백조. 승무원들의 유니폼에 배어 있는 땀은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작업복에 밴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름다운 옷차림과 세련된 화장에 가려 있든, 기름때에 절어 보이지 않든 그 속에는 치열한 노동이 똑같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노동자들끼리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카메라를 들고 늘 하던 것처럼 “자, 자연스럽게 좀 웃어 보세요” 하고 얘기했다가, 이내 아차 싶었다. 웃음조차 ‘일’이고 ‘서비스’인 그네들한테 못할 소리를 한 것 같았다. 앞으로는 비행기 안에서도 그네들이 진심이 담긴 웃음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

 

  * ‘이미지’를 목숨처럼 여기는 항공사의 특성 때문에, 이야기를 나눈 노동자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썼고 사진도 싣지 못했다. 부디 <작은책> 독자님들만이라도 거짓으로 포장된 이미지보다 노동의 진실을 먼저 알아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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