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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눈

긴 글/리뷰

by 최규화21 2010. 3. 2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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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눈

     ― <경계도시2>(감독 홍형숙)를 보고

   

 

  흔히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똑같은 일 말입니다. 고작 열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수였지만 <경계도시2>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어떤 노여움과 미안함과 답답함, 그리고 큰 부끄러움으로 뒤섞인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계도시2>는 북한의 노동당 후보위원 서열 23위 김철수, 이른바 ‘분단 이후 최대의 간첩’으로 알려져 37년 동안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송두율 교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2003년에 대한민국으로 돌아옵니다. 그이가 독일을 출발하기도 전에 사법부에서는 체포 영장을 발부해 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노무현 대통령 당선으로 한껏 고양된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뜨거운 여론은 37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재독 민주화 인사가 공항에서 체포되는 일만은 막아 줍니다.

  송두율 교수는 그야말로 감격스럽게 고국 방문에 성공하지만 그 감격은 하루를 가지 못합니다. 공안 기관과 검찰의 수사를 계속 받는 동안 한국의 수구 세력들은 ‘간첩’ 송두율을 통해 진보 개혁 세력에게 빼앗긴 여론의 향방을 바꾸어 놓으려 총공세를 폅니다. 수사 과정에서 송두율 교수가 이전에 말했던 것과 다른 사실들이 검찰의 입에서 수구 언론을 타고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우호적이던 여론도 점점 등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야심차게 송두율 교수를 모시고 왔다가 도리어 궁지에 몰리게 된 진보 개혁 세력도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전향’을 선언하라는 의견이 진보 개혁 세력 안에서도 나오면서 송두율 교수는 안팎에서 큰 압력을 받습니다.

  여기서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원탁 회의 장면이 나옵니다. 송두율 교수의 귀국을 추진한 한 국내 인사는 공안 당국이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헌법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준수하고 노동당을 탈당하고 독일 국적을 포기하겠다는 세 가지 내용의 ‘전향 선언’을 하자고 소리칩니다. 북한에 드나들고 노동당에도 가입했다면 그게 어떻게 남도 북도 아닌 ‘경계인’이냐고, 남한에 살려면 북을 버리고 완전히 남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수구 세력들의 논리 그대로 따지기도 합니다.

  그날의 회의에서는 송두율 교수의 의견을 받아들여 전향 선언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지만, 무슨 까닭인지 다음 날 기자 회견을 통해 돌연 앞서 말한 세 가지 항목의 ‘전향’을 약속하고 맙니다. 하지만 거기서 만족할 공안 당국이 아니었습니다. 그자들은 전격적으로 송두율 교수를 구속합니다.

  송두율 교수에게 ‘전향’을 강요했던 진보 개혁 세력들은 아차 하고 후회를 합니다. 징역을 살아야 하면 살고 국외 추방을 당해야 하면 당하겠다고, 국가보안법 앞에 백기를 들지는 않겠다고 내내 이야기했던 송두율 교수의 말이 이제야 제대로 들린 것입니다. 그리고 사건의 진짜 핵심인 ‘국가보안법’의 존재를 그제서야 기억해 냅니다. 송두율 교수를 고국으로 초청한 까닭은 그저 송두율 교수에게 고향이나 방문해 보라고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송두율 교수를 37년간 경계인으로 살게 한 국가보안법과 정면으로 맞장을 뜨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뒤늦게 떠올린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의 표정이 다 똑같았던 것은 바로 이 부분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를 보던 사람들도 그 전까지는 김철수냐 아니냐, 노동당 후보위원이냐 아니냐 하는 것만 생각하며 보고 있다가, 이 대목에 와서야 다들 송두율 교수를 간첩으로 만든 진짜 까닭은 그이의 이런저런 행적이 아니라 바로 국가보안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편의 기억이 있었습니다. 바로 2006년 10월에 터진, 이른바 ‘일심회 사건’입니다.

  그때 저는 오랜만에 보는 간첩단 사건에 ‘아직도 이런 구시대적 공작 정치를……’ 하고 혀를 몇 번 차고 금세 관심을 거두었습니다. 간첩으로 지목된 이들의 얼굴은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네들과 저는 같은 당의 당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일 터져 나오는 수구 언론의 ‘생중계 보도’를 보며 ‘어? 진짜 간첩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간첩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잘못한 게 있기는 한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주위에서는 한 술 더 떠서, 국민들에게 우리 당을 ‘간첩당’으로 보이게 한 그네들을 당에서 쫓아내자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느꼈지만 뭐라 설득해야 할지 몰라 그저 답답해하기만 했습니다. 송두율 교수에게 전향을 이야기한 사람들의 마음도 그랬을 것입니다. ‘공안 당국이 나쁜 놈들이기는 하지만 송두율 교수도 뭐 다 잘한 것은 아니니 일단 여론을 돌리기 위해 전술적으로 전향을 선언하자’ 하는 생각이었겠지요.

  영화를 다 보고 영화관을 빠져나온 시각은 밤 9시쯤이었습니다. 순간 어디로 가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습니다. 힘든 마감 작업을 마치고 얻는 꿀맛 같은 휴가라 늦은 시간까지 재미나게 놀려고 계획해 둔 약속들이 있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송두율 교수에 대한 내 의심과 일심회 당원들에 대한 내 불신은 그날 이후로 그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던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그네들의 가슴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그리고 국가보안법에게는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로 남아 있겠지요.

  송두율 교수는 열 달 만에 집행 유예로 석방되어 독일로 돌아갑니다. 법원의 판결은 무죄. 독일 국적을 얻고 난 다음 북한을 방문한 것까지 모두 무죄였습니다. 하지만 송두율 교수가 구속될 때 카메라 플래시를 폭죽처럼 터트리며 승리의 축제를 낱낱이 중계했던 수구 언론들은 송두율 교수의 석방과 무죄 선고에는 철저히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침묵 속에 일심회 재판도 ‘일심회는 없다’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영화를 본 지 하루가 지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송두율 교수와 일심회 당원들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또 한 군데 더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국가보안법이라는 거대한 시선이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을 보고 삽니다. 저 역시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국가보안법을 잊고 살았지만, 앞선 이들에 대한 제 의심과 불신을 먹고 자란 그 거대한 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이렇게 불온한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뒤에도 혹시 그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당신은 그것을 느끼고 있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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