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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별은 다시 떠오르는가

긴 글/리뷰

by 최규화21 2009. 3. 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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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별은 다시 떠오르는가

   ―《중국의 붉은 별》(애드가 스노우 씀, 신홍범 옮김, 도서출판 두레, 1985)을 읽고 ―

 

 

  너무 늦었다. 아무리 이 책이 꽤 오랜 시간 이른바 ‘빨간 책’으로 묶여 있었다 하더라도, 진작부터 꼭 한 번 읽어야 할 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스스로 기회를 만들지 못했던 것이 반성이 되었다. 이것을 중국혁명의 정사라고 할 수도 있고 일개 이방인 기자 한 사람이 기록한 아주 주관적인 르포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조차 모르고 중국혁명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혹은 다른 어떤 사회의 변혁이나 진보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글들은 그것이 담고 있는 사건들만으로도 꽤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되었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그 사건들을 지금의 우리 현실에 끌어와 보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중국혁명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본주의의 대안적 사회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중국의 사회주의혁명이 남긴 교훈을 정리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듯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중국과 현재의 한반도 사이에는 공간적 이질성과 함께 한 세기라는 시간적 격차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냥 보아 넘겨서는 안 되는 교훈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머릿속에 가장 많이 품었던 생각은 ‘이런 일들이 오늘날 한반도에서 일어난다면’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일들이 오늘날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반세기 전 한 나라가 둘로 나뉘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갈등을 경험했고, 그 갈등의 결과물인 분단이 엄존하고 있는 21세기의 한반도에서 과연 다시 한 번 전쟁이라는 상황이, 더군다나 사회주의 혁명전쟁이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그야말로 ‘문제적인’ 질문이다. 사회주의 혁명전쟁은 과거 한반도의 혁명노선으로 활발하게 논의된 바 있다. 지금 변혁운동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혁명전쟁노선이 얼마나 영향력을 가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과거와 같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남미 등지에서 일고 있는 선거혁명의 바람과 2000년 이후 진보정치세력의 등장은 한반도에도 전민항쟁의 노선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혁명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정권이 집권한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쟁이라는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사력에 대한 장악―군사적 행동의 가능성에 대한 상정― 없이 오직 정치적 방법에 의한 선거혁명은 이루어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아직 남한 땅에 주한미군이 주둔해 있는 상황에서는 선거혁명을 통해 진보정치세력이 집권을 한다고 하더라도 친미수구세력들의 반동 쿠데타에 의해 그 정권은 전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 이후에 진보정치세력을 향해 대대적인 숙청과 보복의 피바람이 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사실 오늘날의 한반도는 대중들의 정치적 인식 수준으로 볼 때, 전면적인 전쟁이 아니더라도 전쟁에 준하는 어떠한 군사적 행동도 대중들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이른바 87년체제를 겪으면서 절차적 민주주의와 인권, 반전과 평화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전민항쟁의 혁명전쟁노선이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런 상황을 큰 이유로 삼고 있는 것 같다.

  내 생각을 요약하자면 중국에서와 같은 전쟁 상황이 한반도에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을 것 같다. 이 말은 한반도의 변혁은 혁명전쟁의 노선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혁명전쟁의 노선을 한반도 변혁의 노선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높지 않은 수준으로라도 상정해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남한 사회의 변혁적 역량이 진보정당과 통일전선체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것을 전제로 남한에서의 선거혁명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꿈꾸어 볼 수 있음직한 것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전쟁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시점은 바로 이 선거혁명의 직후이다. 대강 어떤 상황인지는 굳이 멀리 차베스의 예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노무현정권 출범 직후 발생한 탄핵정국을 떠올리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 시도는 일종의 반동 쿠데타라고 생각한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 정도의 중도세력―사이비 개혁세력―에 대한 수구세력의 대응이 그 정도였다면, 진짜 진보세력, 민중세력이 정권을 잡는다면 수구세력의 반격은 쿠데타와 같이 군사적 양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쿠데타가 단기간에 진압되지 않고 장기적인 내전으로까지 심화될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지금으로서는 이 모든 것들이 사실 전망이라기보다 공상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것을 역사는 한반도의 혁명전쟁이라고 기록하지 않을까?

  아무튼 이 모든 이야기는 마오쩌둥의 대장정과 같은 일이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일종의 공상에서 출발한, 말 그대로 하나의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전쟁의 성격이 무엇이든 한반도에 다시금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반목과 야만적인 살육의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일단 몹시 섬뜩하고 두려운 일이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이 닥치지 않게 하는 것이 민중을 위해 가장 훌륭한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그 같은 상상을 꼭 해보기를 바란다. 중국의 혁명은 어떤 힘에 의해서 시작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가를 바로 인식하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말해 주는 것들을 발견하여 실천적으로 고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중국의 붉은 별》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교훈이기 때문이다.

  "전략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인민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인민의 억압자들을 때리는 인민의 주먹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은 홍군이 어떻게 그런 기적 같은 승리를 이룰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홍군 사령관의 대답이다. 그 승리의 근본은 바로 ‘인민’이었다. 나는 모든 정치적 실천은 결국 무엇을 근본으로 두고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포에니전쟁 때 피레네산맥과 알프스산맥을 넘은 한니발 부대의 행군을 ‘소풍’으로 만들어 버린 홍군의 대장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근본을 단단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곁에는 진보나 보수나 매한가지로 인민의 주먹이 아니라 인민의 머리가 되고자 하는 지도자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인민의 주먹. 이 한 마디를 가슴 속에 새롭게 간직하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은 그 가치를 백 퍼센트 입증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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