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동정할 자격이 있나
― 임영선 개인전 '지상에서(ON THE EARTH)'를 보고
미술에 문외한인 내가 미술 전시회를 소개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임영선 개인전을 알리는 포스터에 있던 한 아이 때문이었다. 검고 짧은 곱슬머리와 짙은 피부색의 얼굴을 포스터 전면 가득 채우고 있던 아이.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와 눈을 맞추고 있는 그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은 나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2월의 마지막 일요일, 그 눈망울을 다시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서울 종로구의 ‘아라리오 갤러리(Arario Gallery)’. 이번으로 여섯 번째 개인전을 여는 작가 임영선은 민족미술인협회 회원으로 1991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작업실의 아이들전(2008년)’, ‘일상의 억압과 소수자 인권전(2006년)’과 같이 어린이나 인권을 주제로 한 여러 차례의 기획전에 참여해 왔다. 이번 개인전에는 작가가 티베트, 몽골, 캄보디아 등지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을 대형 캔버스에 그린 8점의 유화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맨발에 구호단체에서 나눠 준 옷을 걸치고, 자루를 어깨에 메거나 집게를 손에 쥔 채로 쓰레기장을 뒤지고 있다. 그들의 남루한 옷자락에 오버랩 되는 풍경은 아이들의 삶과 하나가 되어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의 현실을 상징하는 듯도 하다. 문득 우리의 지난날을 떠올리며 일말의 동정을 품으려는 찰나, 쓰레기장에 가득한 아이들 가운데 나와 눈을 마주친 단 한 명의 아이는 나의 동정을 꾸짖는다(<Steung Meanchey>).
아이들이 매고 있는 비료 포대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한화석유화학’이라는 한글 상호명과 그들의 뒤에 배경처럼 서 있는 ‘HYUNDAI' 트럭(<The sky and the earth>). 낯선 외국에서 만난 우리 기업들의 이름이 반가움이 아니라 어떤 죄스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어떤 이들은 이곳의 초원을 어느 후진국의 개발되지 않은 황무지로만 볼 테지만, 그곳의 아이들에게 이곳은 소중한 역사가 깃든 삶의 터전이다. 초원과 하나가 된 아이들은 천진하면서도 엄한 눈빛으로 나도 모르게 가졌던 적반하장 격의 알량한 연민을 나무라고 있다(<Mongolia>).
우리가 제3세계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냥 오지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곳. 요즘 들어 그곳의 아이들을 돕기 위한 봉사활동이나 모금운동 같은 것들이 부쩍 잦아진 것 같다. 그런 활동들을 접하면 서명으로라도 동참하고 한 달에 얼마씩 기부라도 해야 세계시민의 자격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들을 두고 가엾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아무 것도 안 하는 사람보다는 무엇이라도 실천하는 사람이 훨씬 낫지만, 동정과 연민에 겨운 그런 자위적(自慰的) 행동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기는 것은 참 위험하고 어찌 보면 참 뻔뻔하기도 한 생각이다. 그래서 임영선의 그림 속 아이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엄하게 다그쳐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은 그들을 동정할 자격이 있는지. 혹시 당신도 그들의 고통을 대가로 우리의 국익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는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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