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연극 감상>
한 세기의 삽질로 묻어 버린 것들
― 연극 <삽질>
지난달 7일, 연극 <삽질>(극, 연출 최철)을 보기 위해 서울 종로구에 있는 ‘혜화동 1번지’를 찾았다. <삽질>은 2005년 1월 창단 공연을 무대에 올린 문화창작집단 ‘날’의 네 번째 작품이다. 이날 70석 남짓한 객석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찼고, 함께 갔던 열세 명의 <작은책> 독자들은 옆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대고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생생히 들으며 소극장 공연의 매력을 만끽했다.
지난해 7월 촛불 시위에 참여하고 돌아간 한 여학생이 손피켓 뒤에 유서를 써 놓고 투신자살한 사건이 <삽질>의 모티브가 되었다. 2008년의 촛불 소녀와 일제 강점기 친일파 여학생, 빨치산 형을 둔 해방 정국의 우익 농민, 유신 시대 월남전 참전군 출신의 교사, 그리고 변절한 90년대 운동권 출신 청년 사업가. 시대를 뛰어넘어 한 곳에서 만난 이들 다섯의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우리의 아픈 지난날과 그날들로부터 이어진 오늘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왜,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시작한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삽질. 아무리 삽질을 거듭해도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와 갇히게 되는 현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죽여 주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삽질이 집을 짓기 위한 삽질이 아니라 무덤을 파기 위한 삽질이었음을 고백했다. 신념을 묻고, 양심을 묻고, 인간을 묻기 위한 삽질이 모두의 죽음을 통해 끝나는 순간, 촛불 소녀는 객석을 향해 간절한 마지막 독백을 전했다. “여기서 그만 끝내자. 당신들도. 제발…….”
그 어느 때보다 ‘삽질’이라는 낱말을 입에 올릴 일이 많아진 요즈음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가 이유도 방향도 모른 체 계속해 왔던 삽질의 정체를 이제 우리 스스로 깨달아야 할 필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거대한 집단의 이름으로 행해진 나의 삽질에 의해 무덤으로 묻혀 갔던 우리 이웃들의 이름을 다시 되새겨 보면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지겨운 변명을 대신할 진짜 이유를 좀 찾아보자. 우리들도.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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