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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 ‘대통령 추천도서’ 저자, 이만열 교수가 말하는 선진국론

긴 글/인터뷰와 현장기사

by 최규화21 2015. 9. 1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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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도서 북DB

[저자 인터뷰] ‘대통령 추천도서’ 저자, 이만열 교수가 말하는 선진국론


이만열 교수에게서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인터뷰를 제안한 지 2주 정도가 지난 때. 너무 바빠서 도저히 직접 만날 시간이 없다고, 서면 인터뷰로 대신하기로 한 뒤였다. 질문지를 보내고 다시 며칠을 기다리고 있던 가운데 직접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바쁜 일정 가운데 잠시 시간이 났다는 이만열 교수를 한 시간 뒤에 바로 만나기로 약속하고 부랴부랴 서울 인사동으로 출발했다.

한국 이름 이만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가 본명인 그는 미국인이다.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이자 아시아인스티튜트 소장인 그가 갑자기 주목받는 이유는 2013년 그가 쓴 책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 ‘대통령 추천도서’가 됐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 4일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우수성과 가능성에 대해서 잘 기술되어 있었다”고 이 책을 소개하며 “마음으로 공감”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후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통역 없이 인터뷰를 할 만큼 한국어를 잘한다는 사실은 오히려 놀랍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여느 한국 사람들보다 훨씬 ‘한국식 예의’에 익숙하다는 점이었다. ‘선비정신’을 한국 사람을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외교전략으로 제안한 그에게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늘 겸손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그의 이야기는 대통령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우수성과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거꾸로 그 우수성과 가능성을 제대로 키워가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향한 따끔한 일침이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선진국이라는 ‘환상’을 깨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 이만열 교수. 그는 한국이 최근 50년 동안 이룬 고도성장과 민주화는 현대에 와서 ‘수입’된 것이 아니라, 모두 수 세기 전 우리의 전통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1등 대한민국’이라는 환상만 좇느라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의 전통. 그가 확인한 ‘다른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




“한국 정치문화 안에서는 선비정신 중시되지 않아”

Q 굉장히 바쁘시다 들었습니다. 근황부터 간단히 말씀해주시죠.

신문 기고도 꾸준히 하고 있고, 서울의 문화를 소개하는 책을 준비 중이에요. 중국어 책도 하나 출판하려고 원고를 쓰고 있어요. 아시아인스티튜트 연구소에서 세미나도 많이 하고, (기자님처럼) 재미있는 사람들 만나서 얘기도 하죠.(웃음) 오늘 아침에는 공무원교육원에서 이 책(<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으로 특강했어요. 특강이 많아요. 정부나 기업, NGO 등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해요.

Q 책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마음으로 공감하는 책”이라고 이 책을 소개했는데요, 이 책의 어떤 점이 박근혜 대통령의 공감을 산 것 같습니까?

알 수 없죠.(웃음)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강조했지만, 창조경제의 알맹이가 뭐냐는 사람들의 질문이 많았어요. 혹시라도 대통령이, 과거를 통해서 한국문화를 재평가하고 현대사회에서 활용하는 것이 창조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몰라요.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에서 1년 정도 활동한 적 있지만, 대통령은 만난 적 없어요. 저도 (대통령이 이 책을 추천했는지도) 전혀 몰랐어요. 갑자기 신문에서 봤다고 친구한테 전화가 와서 알게 됐어요.

Q 대통령의 추천을 계기로 이 책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에 대해 소감이 어떠신가요?

당연히 지금까지 제가 노력해온 것들을 높은 차원에서 인정받은 것이 기뻤어요. 약간 신기하게도 생각했죠. 대통령이 휴가 때 어떤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정식으로 국무회의에서 국정에 참고하라고 한 것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라 신기하게 생각했죠. 제가 이 책을 쓸 때는 한국에 산 지 5년 정도 됐을 때예요. 항상 ‘한국이 이렇게 하면 좋겠다’ 하고 여러 가지를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여러 신문에도 기고했고요. 물론 한국 사람하고 시각이 다르고 태도도 다를 수 있죠. 저는 선진국에 대해서 환상이 없어요. 그래서 이 책은 한국 사람은 쓸 수 없는 이야기죠. 

Q 교수님은 학부 때는 중문학을 전공했고 석사 학위는 일본 도쿄에서 비교문화학으로 받았습니다. 동아시아 3국 중 한국에 대한 공부를 제일 마지막에 하게 되신 셈인데, 뒤늦게 알게 된 한국에 대해 가장 큰 매력을 느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혹시 한국인 아내분 때문이신지?(웃음)

물론 한국인 아내도 매력 있는 사람이에요.(웃음) 제가 한국을 선택한 것은 맞지만, 어떤 의미에서 한국도 저를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한 10년 일본문학 교수(일리노이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를 하는 동안 한국 사람들이나 한국 대학들이 적극적으로 저한테 제안이나 부탁 한 것들이 많아요. 미국에서 마지막에는 주미한국대사관 자문(홍보원 이사)까지 했어요. 충분히 중국이나 일본과 교류가 많을 수 있었지만 한국의 적극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한국에는 기회도 많죠. 일본학, 중국학은 1950년대에 개척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한국학은 이제 시작이죠. 제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요. 2011년에 연암 박지원의 단편소설 10편 전부를 제가 영어로 번역했어요. 처음이었어요. 그 전에 <양반전>과 <허생전>이 번역돼 있었지만 질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연암 박지원 한국문학의 핵심 작가인데 그때까지 아직 번역이 다 안 돼 있었어요. 어떤 점에서 한국학은 쉬워요. 제가 언어가 잘 안 돼서 문제지.(웃음)

Q 일본의 ‘사무라이’나 ‘닌자’처럼 한국의 정체성을 소개할 개념으로 ‘선비정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선비정신에 주목하신 건가요?

 1990년대 말에 연구위탁을 받아서 다산 정약용의 글을 번역했어요. 그 전에 논문 쓰면서 다산 정약용의 글을 읽어보기도 했죠.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사회나 서민에 대한 책임감이 있고, 학문과 행정, 정치를 동시에 하는 지행합일 사상이 강하고, 문학이나 글로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것들이 인상 깊었어요.

동시에 전략적인 면으로는, 한국 사람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별로 없어요. 일본 사람은 사무라이 이미지가 있고, 독일 사람, 영국 사람 하면 외국 사람들이 누구나 알고 있는 이미지가 있어요. 일본은 전략적으로 사무라이 이미지를 키우려고 했죠. 선비정신에 대한 낭만적인 관심도 있지만 동시에 구체적인 외교전략으로 선비라는 콘텐츠를 생각한 거죠. 대통령도 그 부분에 관심이 있었을 수 있어요.




“고도성장은 조선의 노하우 덕분... 1970년대에 시작된 것 아냐”


Q 선비정신을 한국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자랑하지 못하는 것에는 우리 스스로 선비정신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 또한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 중에서 이런 선비정신에 부합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조선시대에 당시에도 다산 정약용은 아주 이례적인 사례예요. 하지만 선비정신을 계승하는 한국 사람들이 분명히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학자도 많고, 학자가 아니라도 그렇게 마음이 열려 있고 지적 호기심도 있고 책임감도 갖고 있고 예의바르게 여러 사람과 교류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있죠. 그렇지만 한국의 정치문화 안에서는 선비정신이 중시되지 않아요. 한국의 근대화 신화에서는 옛날 것을 다 버리고 미국처럼 선진국이 돼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는데요, 그건 문제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외국 사람들은 선비문화에 더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어요.

Q 선진국에 대한 환상을 책에서는 ‘새우 콤플렉스’라는 단어로 압축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조금만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있죠.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저는 꼭 그럴 거라고(선진국 고래 사이에서 한국 새우의 등이 터질 거라고) 믿지 않아요. 물론 한국에 약점이 많이 있죠. 하지만 벨기에나 독일이나 이탈리아나, 제 어머니 고향인 룩셈부르크나 다 비슷하게 새우죠. 새우는 이 세상에 많고, 한국은 오히려 다른 나라에 비해서 조건이 좋아요. 요즘은 동아시아의 새 문화가 일본이나 중국보다 한국에서 발생돼요. 한국이 여전히 약한 새우라는 생각은 한국의 발전을 많이 방해하고 있어요. 상당히 심각하죠.

저는 실제로 대전에서 한국의 기술을 세계에 소개하는 일도 했는데, 한국에는 특별한 기술이 없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도 많아요. 그렇지 않아요. 상당한 기술이 있어요. 문화도 마찬가지죠. ‘설마 외국 사람들이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겠나’ 하지만, 관심 있는 사람 생각보다 많아요. 한류도 마찬가지죠. 한류는 한국 사람들이 전략적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고, 전혀 상상도 못한 동남아나 일본에서 한국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시작된 거잖아요. 한국은 항상 자국의 문화적 가능성을 파악하는 데 늦어요. 참 신기합니다.

Q 이런 새우 콤플렉스가 자리 잡게 된 원인이 있을 텐데요. 어떤 원인이 있을까요?

전형적으로 옛날 중국 사대주의를 원인으로 이야기하죠.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일부러 한국 전통문화를 낮게 평가하고, ‘한국 사람들은 추상적인 주자학에 빠져서 근대화에 실패하고 자기들끼리 싸워서 결국 어쩔 수 없이 일본이 들어왔다’는 식의 교육이 있었잖아요? 이상하게 그런 사고방식이 여전히 남아 있어요. 한국문화를 버려야 근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한국문화라고 하면 김치 같은 관습적인 부분만 생각해요.

17, 18세기 조선의 우수한 행정시스템이나 유기농의 전통, 14세기 불교사상 같은 것들은 배운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신기해요. ‘한국 사람다운 것’이라고 하면 일상생활이나 음식만 생각하지, 한국의 오래된 역사, 문화, 사상에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많죠. 저는 반대죠. 저는 매운 것 못 먹어요, 채식해서 불고기 안 먹어요, 한국 텔레비전에 큰 관심 없어요, 케이팝(K-Pop)도 우리 아이들 통해서 알게 됐지만 큰 관심 없어요. 하지만 한국의 전통이 매력 있어요. 그리고 현대사회에서도 그 전통을 충분히 활용가능 하다고 생각하죠.

Q 책에서, 주자학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40, 50대 한국인들의 거부반응이 심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20, 30대 젊은 층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미래세대인 그들의 반응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주자학에 관심 있는 젊은 학생들도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많지 않죠. 주자학이 뭔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요. 만약 한국이 주자학 전통을 다 버린다면, 그건 조선시대 문화의 70%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셈이에요. 현명한 게 아니죠. 한국의 고전문학으로 <춘향전>과 <홍길동전>을 대표적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춘향전>과 <홍길동전>도 물론 좋은 작품이지만, 문학적 깊이가 그리 깊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이나 야담 같은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읽지도 않고 외국어로 번역도 하지 않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주자학은 바보 같은 학문이 아니에요. 형이상학, 도덕 문제부터 구체적인 행정, 사회질서 문제까지 깊이 고민하는 학문이에요. 고등학생들도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 같은 학자들에 관해 배워야 하는데, 지금은 효도 같은 태도만 가르쳐요. 예학은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당시의 경영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관심도 없고 소개하지도 않아요. 주자학에 입각한 조선의 행정시스템은 현대사회에서 충분히 참고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서 아쉬워요. 1970년대 이후 고도성장의 가장 큰 이유도 조선왕조 500년 동안 우수한 행정시스템을 운영한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갑자기 1970년대에 시작된 게 아닙니다.

Q 책에서 “자생적 민주주의의 전통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자생적 민주주의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요?

한국 사람들은 한국의 과학기술이 1970년대에 발전했다고 하는데, 한국은 13세기에 이미 수학, 기계공학 등에서 세계적으로 앞서가고 있었어요. 두 번째로 앞서 말씀드린 행정시스템도 그렇죠. 세 번째로 민주주의도 19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처음으로 민주화됐다고 하는데, 책임감 있는 정치인, 권력의 분립 등은 적어도 15세기부터 있었죠.

물론 다 잘 된 건 아니지만, 잘못된 정책에 항의하는 지식인이나, 투명성과 책임성이 바탕이 된 행정시스템, 과거시험을 통한 평등한 기회, 적서차별 철폐운동이나 노비해방 운동 등이 분명히 있었어요. 민주주의가 1980년대에 갑자기 생겨난 건 아니에요. 민주주의 사상과 시스템의 전통이 이미 있었다는 거예요. 현대 민주주의와 다른, 좀 복잡한 모습이지만 유교 민주주의가 존재했어요. 분명히 민주주의는 ‘수입품’이 아니에요.



“주자학 전통 버린다면 조선시대 문화 70% 쓰레기통에 버리는 셈”

Q 다시 새우 콤플렉스 얘기로 돌아가자면, 저는 ‘삶의 질’ 문제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한국의 ‘삶의 질’은 몇 가지 지표로도 쉽게 입증할 수 있는데요,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GDP 대비 복지예산 비율과 국민행복지수, 아동의 삶 만족도, 출산율, 평균 수면시간, 노조 조직률 등에서 꼴찌입니다. 반면 자살률은 1위이고요. 정신적인 차원에서 새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이런 구체적인 현실 지표들을 극복하고 선진국 인식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렇게 볼 수 있죠. 하지만 많은 한국 사람들은 미국의 잘사는 동네에 가서 잘사는 모습만 보고 ‘미국은 선진국이고 한국은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요. 그건 정확한 비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사람들도 많고, 식자율(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도 한국보다 낮아요. 그리고 감옥에 가는 인구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2011년 인구 대비 재소자 비율 0.71%), 흑인과 백인의 인종갈등도 요즘 다시 심해졌죠. 경찰이 민간인을 죽이는 사건도 많잖아요. 1년 동안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민간인이 400명이 넘어요(2006~2012년 평균). 한국에서 50년 동안 경찰이 죽인 민간인이 40명이나 될까요?

그런데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서 보는 것에 한해서는 미국은 선진국이 맞아요. 많은 사람들이 좋은 동네, 잘사는 도시만 가서 보는데, 그건 미국의 한 10%밖에 못 본 거예요. 길 하나 건너서 흑인들 사는 동네만 가도, 그렇지 않아요. 미국만큼 심하진 않지만 유럽도 비슷하죠. 출판사는 이 책의 주제를 ‘1등 국가 한국’이라는 식으로 많이 홍보했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없다 하는 것을 떠나서 ‘선진국은 실체 없는 환상이다’라는 점이었어요. 선진국에 대한 환상을 버리자는 게 핵심이죠. 

Q 교수님이 느끼시기에 외국 사람들의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요?

한국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미국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케이팝을 들어요. 한 2년 전에는 제가 웹툰 ‘미생’을 소개하는 글을 썼거든요, 제가 쓴 글 중에서 조회수가 가장 많았어요. 그런데 문제는, 외국 사람이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한국 사람들은 대단하다고만 하지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아요. 그래서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아요. 한국어 수업 들으면 교수가 적당히 점수를 주고, 표준발음이나 문법을 요구하지 않아요. 그래서 유학생들이 별로 발전하지 않아요.

유학생들은 항상 영어로 하는 수업만 듣고 있죠. 외국인들이 고급 한국어를 배울 수 있게 도와주지 않아요. 외국인들은 편할지 모르겠지만 한국에게 별로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유학생들은 한국어 수업 듣고 한국어로 논문 쓰게 하는 게 낫죠. 그러면 한국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외국인 전문가가 나와요. 한국은 지난 20~30년 동안 외국인 한국 전문가를 키우는 것에 별로 투자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그렇지 않았어요. 제가 수업도 다 일본어로 들었고 논문도 일본어로 다 썼어요, 많이 힘들었지만 많이 배웠어요.

Q 솔직히 요즘처럼 취업에 도움이 되는 학문만 각광받는 시대라면 한국 학생들 중에도 한국 고전문학에 관심을 두는 학생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학교 현장에서 보시기에는 어떤가요?

우수한 학생들이 많아요. 재미있게 가르쳤어요. 하지만 보통은 국문과라고 해도 한국문학, 근대문학도 잘 몰라요. 작가 이름도 모르고 문학사도 잘 몰라요. 관심도 없어요. 오히려 외국 사람들이 관심 많죠. 요즘은 어딜 가나 국문과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중국 학생들이라고 그래요. 한국 사람들은 영어만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이나 아시아 국가들 가면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더 배우려고 하죠.

Q 세계화, 국제화라는 게 거의 20년 이상 계속돼온 한국사회의 화두인데요, 보통 한국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퓨전(Fusion)문화를 많이 생각합니다. 퓨전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있을 수 있죠. 하지만 많은 경우 퓨전문화는 깊이가 없죠. 가야금하고 기타를 같이 연주한다면, 작곡가가 오랫동안 깊이 고민해서 작곡했다면 나름 멋있을 수 있죠. 하지만 많은 경우 무슨 행사장에서 연주하는 곡들은 오랫동안 고민해서 준비한 곡이 아니에요. 퓨전, 쉬운 거 아니에요. 상당한 고민도 필요하고, 서양문화와 한국문화를 깊이 이해한 다음에 할 수 있는 거죠. 케이팝도 언제까지 인기 있을까 걱정이에요. 산업화된 것이 많고, 똑같은 모습 똑같은 노래가 너무 많아요. 오히려 한국의 전통음악을 재해석하면 더 멋이 있어요. 

Q 선비정신 등 한국의 정신문화를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 소설이나 영화를 만들어 알리는 방법을 강조하신 바 있습니다. 소설이나 영화로 세계에 알리고 싶은 한국의 ‘콘텐츠’에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곧 ‘사도’라는 새로운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저는 옛날부터 사도세자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어요. 정말 재미있는 비극이라고 생각했죠. 사실 한국의 콘텐츠는 세계에 알려진 것이 워낙 없어요. 퇴계 이황 영화 있어요? 저는 본 적 없어요. 세종대왕조차도 재미있게 해외에 소개한 영화가 없어요. 그건 신기해요. 소개할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저도 영화 만드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 좋겠어요. 세종대왕도 좋고, 사도세자도 좋고, 정약용, 박지원 다 아직 영화가 없잖아요. 어떻게 보면 블루오션이죠.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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