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훈아가 죽었다
박일환
평생을 나가 아니라 너로 살았던 사람
큰 나무 그늘에 기대어 밥벌이를 했으나
치사하게 빌붙어 산 것은 아니었다
짝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짜보다 더 그럴 듯한 진짜로 보여야 했으니
음색부터 표정까지 빈틈없이 맞추느라 애썼을
그의 노동은 가상한 바 있었으리라
그라고 왜 벗어나고 싶지 않았겠는가
담쟁이처럼 악착같이 달라붙고 기어올라
마침내 스스로 빛나는 순간을 빚어보고 싶은 열망이
그라고 해서 왜 없었겠는가
김갑순, 향년 57세의 사내가 품었던 꿈은
자신의 이름을 건 음반을 내는 것
이루지 못한 꿈은 아스라하고
빈소에 찾아온 나운아, 니훈아들이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노래 한 소절 불러주었다지
나 뒤에서 너로 사는 동안
비록 쓸쓸했을지라도
훗날 무덤가에 잡초 무성히 돋거들랑
자랑처럼 걸어 나와 씩 웃어 보아도 좋으리라*
*윤동주의 <별 헤는 밤> 마지막 구절을 변용함.
- <리얼리스트100>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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