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너훈아가 죽었다 - 박일환

시/시 읽기 세상 읽기

by 최규화21 2014. 7. 1. 17:16

본문


   너훈아가 죽었다

   박일환 

 


  평생을 나가 아니라 너로 살았던 사람

  큰 나무 그늘에 기대어 밥벌이를 했으나

  치사하게 빌붙어 산 것은 아니었다

 

  짝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짜보다 더 그럴 듯한 진짜로 보여야 했으니

  음색부터 표정까지 빈틈없이 맞추느라 애썼을

  그의 노동은 가상한 바 있었으리라

 

  그라고 왜 벗어나고 싶지 않았겠는가

  담쟁이처럼 악착같이 달라붙고 기어올라

  마침내 스스로 빛나는 순간을 빚어보고 싶은 열망이

  그라고 해서 왜 없었겠는가

 

  김갑순, 향년 57세의 사내가 품었던 꿈은

  자신의 이름을 건 음반을 내는 것

  이루지 못한 꿈은 아스라하고

  빈소에 찾아온 나운아, 니훈아들이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노래 한 소절 불러주었다지

 

  나 뒤에서 너로 사는 동안

  비록 쓸쓸했을지라도

  훗날 무덤가에 잡초 무성히 돋거들랑

  자랑처럼 걸어 나와 씩 웃어 보아도 좋으리라*

 

  *윤동주의 <별 헤는 밤> 마지막 구절을 변용함.


  - <리얼리스트100> 누리집

' > 시 읽기 세상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민 총궐기 대회장에서 2 - 김장일  (0) 2014.07.22
인생을 묻는 소년에게 - 나태주  (0) 2014.07.09
숲의 말 - 이수호  (0) 2014.06.25
어진 사람 - 백무산  (0) 2014.06.18
곡비 - 고은  (0) 2014.06.11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