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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사람 - 백무산

시/시 읽기 세상 읽기

by 최규화21 2014. 6. 1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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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진 사람

   백무산



  어질다는 말

  그 사람 참 어질어, 라는 말

  그 한마디면 대충 통하던 말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양반이나 상것이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그 사람 어진 사람이야, 그러면 대충 끄덕이던 말

  집안 따질 일이며 혼처 정할 일이며 흉허물 들출 일에도

  사람을 먼저 보게 하는 말

  나머진 대충 덮어도 탈이 없던 말


  시장기에 내놓은 메밀묵맛 같은 사람

  조금 비켜서 있는 듯해도

  말끝이 흐려 어눌한 듯해도

  누구든 드나들도록 숭숭 바람 타는 사람

  보리밥 숭늉맛 같은 사람

  뒤에서 우두커니 흐린 듯해도 끝이 공정한 사람

  휘적휘적 걷는 걸음에 왠지 슬픔이 묻어 있는 사람

  반쯤 열린 사립문 같은 사람

  아홉이 모자라도 사람 같은 사람

  아버지들 의논을 끝내던 그 말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어질기만 해서 사람 노릇 못해,

  그럴 때만 쓰는 말



  - <그 모든 가장자리> 백무산 시집, 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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