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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비 - 고은

시/시 읽기 세상 읽기

by 최규화21 2014. 6. 1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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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비

   고은



  조선시대 양반 녀석들 딱한 것들

  폼잡기로는 따를 자 없었다

  그것들 우는 일조차 천한 일로 여겼것다

  슬픔조차도 뒤에 감추고 에헴에헴 했것다

  그래서 제 애비 죽은 마당에도

  아이 아이 곡이나 한두 번 하는둥마는둥

  하루내내 슬피 우는 건 그 대신 우는 노비였것다


  오늘의 지배층 소위 오적 육적 칠적 역시

  슬픔도 뭣도 모르고 살면서 분부를 내리것다

  울음 따위는 개에게도 주지 말아라

  그런 건 이른바 민중에게나 던져주어라

  그 민중이나 울고불고 아이고 대고 할 일이다

  그런 천박한 일 귀찮은 일은 내 알 바 아니야

 

  하기야 슬픔이 본질적인 것이 되지 않을 때

  울음이 말단이나 노동자에게만 머물 때

  그런 것들이 다만 천박한 것으로만 보일 때

  시인아 너야말로 그 민중과 함께

  민중의 울음을 우는 천한 곡비이거라 곡비이거라

  감옥의 무기수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내 인생을 노래해 주시오

  그 말씀 잊어버릴 때

  나는 시인이 아니다 시인이 아니다



  - <조국의 별> 고은 시집, 창비,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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