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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덕분에 올해도 행복할 겁니다

긴 글/칼럼

by 최규화21 2014. 1. 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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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입니다. 안녕들 하시냐는 물음도 참 조심스러운 시절입니다만, 어느새 시간은 가고 또 새해가 왔습니다. 해가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세상이 뭔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사실 별로 들뜰 것도 없습니다. 다만 반가운 것은 새해 인사를 위해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는 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좀 뻔한 말이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도 주고받습니다.


신년회를 핑계로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참 반갑습니다. 1년에 한두 번 얼굴 보는 고향 친구들도 그런 사람들입니다. 만날 때마다 못 본 사이에 생긴 좋은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로 풀어놓으며 기쁘게 만납니다. 직장 얘기, 가족 얘기, 고향 얘기, 두루두루 하다보니 문득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행복을 사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또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의 크기를 측정하려는 것은 참 바보 같은 짓이죠. 행복의 값을 매기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저것만 있으면 참 행복하겠다’, ‘얼마만 더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전셋값이 나날이 오른다는 뉴스를 보면 ‘내 집 하나 장만할 만큼 몇 천만 원쯤 생긴다면 걱정이 없겠다’ 싶습니다. 다 낡은 장롱 때문에 투덜거리는 아내를 보면 ‘번듯한 장롱 하나 덜커덕 사줄 돈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그럴 때는 돈이 행복을 사다 준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행복은 별별 곳에서 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친구들을 만날 때도 행복은 옵니다. 그날의 행복을 위해 쓴 돈은 왕복 지하철 요금과 밥값뿐이었습니다. 또 아내와 나란히 앉아 재미있는 영화를 보며 같이 웃을 때 저는 행복합니다. 돈은 몇 천 원이면 족합니다. 아내 배 속에 있는 아이한테 ‘오늘도 건강하게 잘 놀았냐’고 물을 때, 고향의 엄마가 전화로 “사랑한다, 아들” 하고 말해줄 때, 제가 만든 기사가 거리에서 싸우는 이들에게 작으나마 힘을 주었을 때, 저는 행복합니다. 그런 행복은 돈 한 푼 들지 않는 행복입니다.


아직 30대 초반의 나이. 하지만 또래에는 벌써 40대를 걱정하고, 50대를 걱정할 걱정을 하고, 60대를 걱정할 걱정을 하기 위한 걱정을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40대에 강남에 ‘입성’하기 위해 남은 30대는 이 악물고 고생하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 학교는 꼭 강남에서 보내야 하고, 같은 외제차라도 기왕이면 좀 큰 차, 아파트도 조금이라도 더 비싼 아파트에서 사는 게 행복하다는 거죠. 그 행복을 다 사기 위해 대체 얼마나 돈이 필요할까요? 그 돈을 벌어서 행복을 사고 나면, 더 이상은 돈이 필요 없을까요?


세상에는 서울에 들어가서 사는 게 목표인 사람도 있고, 반대로 저처럼 서울을 떠나는 게 목표인 사람도 있습니다. 삶의 목표에 따라 행복도 달라지겠죠. 돈을 열심히 벌어서 그것으로 더 행복해지겠다는 사람들을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해서 만족할 수 있을 만큼 행복을 사려면, 대체 얼마의 돈이 더 필요할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그 액수를 자신 있게 딱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저도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먹고살기 위해 돈은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돈으로 행복을 사기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들의 건강한 웃음과, 이름 모를 이웃들과 나누는 작은 정성, 한 걸음 한 걸음 인생의 목표를 향해 가는 조용한 성취를 통해 얻는 행복이 훨씬 크거든요. 옆도 뒤도 안 보고 돈만 버느라 그런 행복을 희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새해 목표는 그것입니다. “올해도, 행복을 지키자.”


안녕치 못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도 그런 행복이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소중한 이들과 함께 걷는 길만큼 행복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요. 당신 덕분에 올해도 행복할 겁니다, 우리 모두.



* <리얼리스트100>(www.realist.kr) 2014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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