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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충하초 - 이수호

시/시 읽기 세상 읽기

by 최규화21 2009. 12. 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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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충하초

   이수호

 

 

  지난겨울 나는 벌레였다

  비굴했다

  작은 굴이나 틈 혹은

  고치 속에 숨어서

  목숨이나 부지하며 살았다

  비바람을 탓하고 눈을 원망했다

  추위가 두려웠다

  봄이 온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참고 견디기 싫었다

  허리를 낮추고 머리를 숙이고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물었다

  번데기로 굳어 외면하며

  감히 맞서지 못하고

  눈치나 보며 살았다

  꿈꾸지 않으니 희망이 없고

  저항하고 싸우지 않으니

  강해 질 수가 없다

  모든 성과는 투쟁의 결과

  봄이 와도 새로운 날개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대로 살아갈밖에

  그리고 여름, 굳어버린 몸에서

  하얀 버섯 하나 솟았다

  푸른 각성이 포자가 되었다

  내가 죽고 썩어야 버섯 하나 자란다

 

 

- <사람이 사랑이다>, 이수호 시집, 알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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