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사냥
우리 팀장님은 참 좋은 분이십니다. 말씀을 참 재미있게 하셔서 하루 종일 웃을 일 한 번 없는 썰렁한 사무실 분위기를 곧잘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침묵 속에 수저 부딪히는 소리만 간간이 들리던 오늘 점심시간에도 역시나 그 어색함을 깨고 우리를 웃게 한 사람은 팀장님이었습니다.
팀장님은 얼마 전 산 아래에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산이라고는 해도 관악산이나 북한산 같은 큰 산이 아니고 동네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는,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그런 뒷산이라고 합니다. 하루 종일 사람들 속에 부대끼며 찌들어 있다가도 멀리 갈 것 없이 퇴근을 하고 집에만 가면 푸른 자연을 마음껏 볼 수 있기 때문에, 처음 며칠 동안은 무척 즐거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 비록 그 즐거움은 시간이 가도 줄어들지 않았지만 ― 예상치 못했던 골칫거리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흘이 멀다 하고 아침마다 마당이며 베란다며 가리지 않고 형이상학적 무늬를 만들어놓는 비둘기 똥 때문이었습니다.
팀장님은 전전긍긍하던 끝에 며칠 전부터 드디어 행동에 들어갔는데, 장난기가 많은 우리 팀장님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막내아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총이었답니다. 어느 날 저녁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순전히 우발적으로 복수를 시작했는데, 사람이 맞아도 꽤 따끔한 장난감 총알을 비둘기들이 맞았으니 효과가 만점이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 아이와 함께 비둘기 사냥(?)에 나서고 있는데, 역시 비둘기들은 ‘새대가리’라서 자꾸 맞아도 자꾸 오더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들어와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인터넷으로 뉴스를 뒤적거리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하나 생겼습니다. 아침마다 팀장님의 집에서 일어났던 일은 과연 팀장님의 집에 괘씸한 비둘기가 똥을 싼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원래 비둘기가 살아가며 밥 먹고 똥 싸는 곳에 팀장님이 집을 지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뉴스를 보니 건설회사와 세입자들 사이의 다툼이 오래되고 있는 재개발지구에 알 수 없는 방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세입자들은 그들을 빨리 내쫓기 위해 건설회사에서 저지른 짓이라며 불안에 떨었고, 건설회사는 세입자들이 보상금을 높이기 위해 한 것이라고 선뜻 이해되지는 않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재개발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과연 건설회사가 아파트를 지어야 하는 땅에 세입자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원래 세입자들이 밥 먹고 똥 싸면서 살아가는 땅에 건설회사가 아파트를 지으려 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도대체 누구의 눈이 진실을 보고 있는 것일까요?
장난감 총알을 맞고 또 맞는 비둘기들의 고통이나,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집에서 이웃의 집들이 하나둘씩 불길에 스러져가는 것을 보고 또 보고 있는 철거민들의 고통이나, 그것은 우리가 겪어본 장난감 총알의 따끔함이나 아침마다 마당의 새똥을 씻어내는 귀찮음 정도와는 비할 수 없는 고통임은 분명할 것입니다. 우리가 점심을 먹으며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던 그 시간에 그 건설회사 앞의 어느 식당에서도 ‘새대가리’라는 말과 함께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을 것만 같아서, 오후 내내 사무실 창밖으로 비둘기들의 모습만 찾게 되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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