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처럼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멋진 경기로 텔레비전 앞의 국민들을 열광하게 했던 선수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이제는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이나 행사에 모습을 보이며 여전히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메달리스트들을 중심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이른바 ‘금메달 지상주의’로 표현되는 현상들이 예전보다 많이 사라진 것 같아서 참 기분이 좋습니다.
다친 몸으로도 끝까지 바벨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역도의 이배영 선수, 한국육상사상 최초로 올림픽 2회전에 진출한 110미터 허들의 이정준 선수, 부상 때문에 메달을 눈앞에 두고 기권해야 했던 복싱의 백종섭 선수, 그리고 다시 한 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선사한 여자 핸드볼팀 선수들까지, 비록 금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 했지만 최선을 다한 그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금메달보다 값진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있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과만으로 평가하기보다 최선을 다한 노력을 인정하는 우리 국민들의 모습이 진정한 금메달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 정말 속상한 것은 올림픽 선수들에게 보여주는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왜 우리 아이들에게는 보여줄 수 없을까 하는 것입니다. 강남의 아파트와 대형 승용차가 행복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옆자리의 친구보다 더 높은 영어 점수와 신도시가 될 곳에 미리 땅을 사두는 선견지명만이 인생의 성공과 낙오를 좌우한다고 믿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 세상은 성과만으로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노력을 인정하고 서로 공존하는 곳이라고 말해줄 용기는 우리에게 정말 없는 것입니까?
예전에 어쭙잖게 아이들을 잠시 가르치면서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는 것은 저의 취미였습니다. 매번 기대를 하지만 매번 실망했던 이유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제 장래희망이라는 말조차 낯선 말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연예인이나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초등학생들은 그나마 뭐라도 되고 싶은 것이 있으니 나은 편입니다. 하지만 고등학생들에게서는 그런 대답조차 듣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강남에 땅도 없고 우리 어머니는 재벌 사장님 딸도 아닌데 장래희망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있겠냐고, 그냥 남들 따라 경영학과나 영문과나 가서 안 되면 공무원 시험이나 칠 생각이라는 대답을 들은 것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만들어낸, 경쟁과 생존, 실패와 낙오라는 가공된 공포에 빠져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왜 우리는 올림픽과 같은 세상을 물려줄 수 없는 것입니까?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나 예선에서 탈락한 선수에게나 최선을 다한 선수에게는 똑같은 박수를 보내는 것이 옳다고 스스로 뿌듯하게 생각하는 우리들인데, 왜 우리 아이들은 오늘 밤에도 최선의 노력에 대한 박수는커녕 1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협박으로 내일의 공포에 미리 시달리며 억지로 잠을 깨우고 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올림픽이 끝나갈 무렵 이명박정부가 부동산 대책이라는 것을 발표했습니다. 며칠 전, 예전에는 선생과 학생 사이였다가 이제는 선배와 후배 사이가 된 녀석에게 반갑게 술을 한 잔 사주다가, 제 외가가 인천이니 이제 제 인생에도 ‘해뜰날’이 올 것 같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는 녀석을 보면서 힘없이 웃기만 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쩔 수 없다는 말 뒤에 숨어 지내는 사이에 세상은 이만큼이나 와버렸습니다. 어쩔 수 있는 것을, 아니 어떻게든 했어야 하는 것을 어쩔 수 없다고만 말해온 것은 바로 우리들인데, 정작 정말 어쩌지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입니다.
꿋꿋하게 뻔뻔하게 (0) | 2009.05.27 |
---|---|
그 무엇보다 '살아남을 권리'는 중요하다 (0) | 2009.01.23 |
비둘기 사냥 (0) | 2008.08.28 |
광우병 사태의 본질 (0) | 2008.05.12 |
미국산 쇠고기에 숨겨진 더 큰 재앙 (0) | 2008.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