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공권력으로 인한 인권침해 사건들의 진상규명은 우리가 꼭 풀어야 하는 숙제입니다. 그래야지만 어둡고, 생명의 가치가 무시되었던 시대와 화해를 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5월 27일 2기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의 첫 조사개시 결정을 환영하며 홍익표 국회의원이 발표한 논평 중 일부다. 홍 의원은 2018년 7월부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며, 지난해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하 과거사정리법) 개정안 통과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7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홍 의원을 만났다. 홍 의원은 “과거사 진실규명 역시 민주화운동의 목적”이라며, “현재와 미래를 위한 민주주의 교육”으로서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의 의미를 강조했다. 아래는 과거사정리법 논의 과정부터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주어진 ‘과제’까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의원님은 어떤 계기로 과거사 정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요?
"가장 큰 계기는 광주민주화운동이었어요. 1980년대 중반 제가 대학교 들어간 당시에는, ‘광주사태’라고 부르며 진실이 왜곡돼 있던 시기였습니다. 또 그때는 의문사 사건이 너무 많았어요. 군대에 갔다가 주검이 돼서 돌아온 선배들,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어느 날 변사체로 발견된 분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국민 보도연맹 사건을 비롯해 극단적인 이념 대립 속에서,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민의 생명을 뺏는 것에 아무런 도덕적 거리낌이 없던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그런 사건들을 보면서 ‘이런 문제들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민주화 역시 이뤄질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민주화운동은 현재의 권력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지만, 과거 민중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문제에 대해서 진실을 밝혀내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것 역시 민주화운동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난해 과거사정리법 개정안 논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짧게는 30년, 길게는 70년 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관계된 분들이 많이 돌아가셨어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시간은 결코 기다려주지 않는데, 국회 논의는 마냥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었죠. 2018년 7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간사로 갔습니다. 법안 논의에 진척이 없으니 안건조정위원회 구성까지 갔고, 그렇게 법제사법위원회에 보냈는데, 법제사법 위원회에서도 상정이 안 되고 있었어요.
지난해 5월 29일이면 20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는 상황이었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씨가 2019년 겨울에 이어서 또 고공 단식농성을 하면서 사회적인 이슈가 됐죠. 그런 국민적 관심에 밀려서 간신히 합의가 됐고, 지난해 5월 20일 20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유가족이나 피해자 분들께 한없이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만난 분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2019년 말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과거사정리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한 적 있습니다. 한국 전쟁 민간인 집단희생 유가족이신 곽정례 어르신이 그날 제 옆에 같이 계셨죠.
이분은 여덟 살 때 아버님이 경찰의 총을 맞고 돌아가시는 것을 눈앞에서 보신 분이에요. 얘기하시기를, 자기가 그 후로 웃음을 잃었다고 하세요. ‘내가 뭘 더 바라겠나, 아버지를 왜 죽였는지, 누가 죽였는지 진상이라도 알고 아버지의 명예회복를 하고 싶다’는 말씀이 굉장히 기억에 남습니다.
아까 얘기했던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최승우 씨도 잊을 수가 없죠. 국회 정문 앞에서 한겨울에 영하 20도 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단식농성을 24일 동안 했어요. 너무 위험한 상태였죠.
그리고 같은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로 무려 926일 동안 국회 정문 앞에서 농성을 했던 한종선 씨가 있죠. 한종선 씨는 누님 이야기를 하세요. 형제복지원 때문에 가정이 파탄 났고, 누님은 그때 겪은 일 때문에 아직도 정신병원에 계시고요. 한종선 씨는 누님을 보면 눈물밖에 안 나온다고 얘기하십니다.
그런 분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인데,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속도를 못 내고 있었죠.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희생 유족 분들은 매일 아침 일곱 시에 하루도 빠짐없이 국회의 모든 입구에서 피켓시위를 하셨어요. 그런 염원들이 모여서 법안이 통과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았다고 지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법안 통과 과정에서 빠진 부분이 두 가지였습니다. 공개 청문회와 배·보상 문제. 배·보상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시하는 문제와, 공개 청문회를 비롯한 조사권한 문제가 논의 과정에서 조정된 것은 아쉽습니다.
청문회는 원칙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활동이 새로운 시민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개 청문회를 통해서 시민들이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진상이 어떻게 밝혀지는지 소상히 알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 과정 자체가 미래세대에게 중요한 역사교육, 시민교육이 됩니다.
그리고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기한을 제한해놨는데, 이건 정치권의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피해자들이 ‘이제 됐다’ 할 때까지, 그분들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과거사 정리를 멈춰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끝으로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 해주시지요.
"첫 번째는 언제나 피해자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는 겁니다. 국가권력의 범죄행위를 조사하는 일이기 때문에, 늘 피해자의 관점에서 억울함을 어떻게 풀어드릴 것인가 하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게 가장 기본입니다.
두 번째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지면 이것을 법원이 바로 받아들여서 재심 절차에 들어 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심 청구를 통해서 법적으로 다시 판단받고, 정치적 명예회복뿐만 아니라 법적 명예회복까지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가의 배상 및 보상 책임이 보다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과거사 문제는 단순히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권력이 어떤 범죄적 행위를 저질렀고, 또 그것을 어떻게 왜곡‧은폐해 왔는지 밝히는 일이기 때문에, 진실규명 기록을 꼼꼼히 남겨서 현재와 미래의 민주 주의를 위해 아주 중요한 시민교육의 자료로 활용해야 합니다."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소식지 <진실화해> 2호(202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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