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긴 글/리뷰

by 최규화21 2021. 12. 26. 16:33

본문

“제 몸 써서 정직하게 일하는 노동의 귀함을 설파하는 미담이 아니라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혹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걸 복으로 알라’는 식의 괴담처럼 학부모들 사이에 유통된다. (줄임) 그런 무지막지한 경고가 극단적 현실로 드러나는 세상은 더없이 참담하다. ‘저렇게 된다’고 어른들이 떠드는 동안 정말로 한 아이가 죽었다.”(<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8쪽)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유, 돌베게, 2019년)은 김동준 군의 죽음을 통해 청소년 노동의 현실을 조명한 인터뷰집이다. 2014년 고등학교 3학년으로 CJ제일제당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김동준 군은 장시간 노동과 작업장 내 폭력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은유 작가는 “겸손한 목격자”(32쪽)가 되기를 자처했다. 모든 글을 작가의 질문 없이 인터뷰이의 구술 형식으로 채웠다. 작가는 김동준 군의 어머니, 이모, 담당 노무사를 비롯해, 제주도에서 산재 사고로 숨진 이민호 군의 아버지, 특성화고 교사와 학생들을 두루 만나 ‘김동준들’의 목소리를 성실히 담아냈다.

 

“겸손한 목격자”로서 작가의 태도는 우리 언론의 현실을 반성하게 한다. 우리 언론이 노동자를 보는 시각은 어떤가. 나라 경제를 망치며 각종 ‘대란’을 불러오는 이기적 존재로 묘사하거나, 반대로 힘없고 불쌍하고 가여운 존재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서, 이미 이슈가 된 사건을 그저 ‘따라가는’ 보도도 많다. 노동자에 대한 작가의 시선에 초점을 맞춰 읽어나가면 활자 이상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기록으로 보존된다. 은유 작가가 기록한 김동준 군의 죽음은 더 많은 ‘김동준들’의 삶을 지킬 것이다. 지난날에는 ‘전태일’이라는 기억이 그래왔듯이.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살기 위해 선택한 노동이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문을 열기도 하는 아이러니. 어쩌면 너무 무겁고 불편해서 외면하고 싶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죽음이 전하는 삶의 가치를 곱씹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추천사를 쓴 최은영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바뀌지 않아’라는 체념이 쌓여, ‘보지 않을래, 알고 싶지 않아’라는 외면이 반복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방임이 ‘사람 사는 게 원래 이런 거야’라는 목소리로 이어져 우리가, 사람을 죽였고, 지금도 죽이고 있다. 청(소)년 노동자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인간도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값싼 소모품이 될 수 없다는 믿음의 몸짓이다.”(252쪽)

 

- 책방아이 북큐레이터 2021. 5. 4. https://blog.naver.com/ibook2017/222337458686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