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새벽배송·도로순찰..'24시간 세상' 지탱하는 야간노동자들(국민일보)

출판과 강연 활동/출판 관련 언론 보도

by 최규화21 2021. 12. 6. 17:01

본문

https://news.v.daum.net/v/20190119040259004

새벽배송·도로순찰..'24시간 세상' 지탱하는 야간노동자들
강주화 기자 입력 2019. 01. 19. 04:02

 

[책과 길] 달빛 노동 찾기/신정임·정윤영·최규화 기록/오월의봄, 214쪽, 1만4000원

 

“이렇게 편리한 세상이 올 줄이야.” 우린 가끔 이런 말을 내뱉는다. 전날 밤에 주문한 롤 화장지가 출근 전 현관문 앞에 떡 하니 놓여 있을 때, 자정이 지나도 집 앞 편의점에서 먹고 싶은 라면을 냉큼 집을 수 있을 때, 새벽 5시 지하철역에서 선로로 미끄러지는 전동차의 불빛을 봤을 때…. 365일 24시간 편의를 제공하는 이 사회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신간 ‘달빛 노동 찾기’는 모두 잠든 시간에도 이런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일하는 야간 노동자들의 삶을 담고 있다. 한밤 비행기 객실을 청소하는 노동자, 찬바람 드는 곳에서 택배를 분류하는 비정규직, 지하철 선로 위에서 일하는 이들, 메인 작가를 위해 24시간 대기하는 ‘막내 작가’, 고속도로 위에서 일하는 안전순찰원 등 9가지 사례가 수록됐다.

부제는 ‘당신이 매일 만나는 야간 노동자 이야기’. 노동 현장 관련 글을 주로 써온 작가들이 장시간·야간 노동을 하는 이들의 일터를 찾아가 그 목소리를 청취했다. 이 정도 소개에 지난해 연말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야간작업을 하다 숨진 20대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수많은 ‘김용균’씨가 여전히 혼자 밤새 일하고 있는데 아무도 그곳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는다”며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장시간·야간 노동의 속성을 짚어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주인공들은 야간 근무 후 잠잘 시간을 쪼개 인터뷰에 응하고 어렵사리 일터를 보여준다. 한 편씩 읽어나가다 보면 내가 누리는 사소한 편의 이면에 놓인 야간 노동자들의 고단함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결국 그 노동으로 지탱되는 우리 사회의 민낯도 들여다보게 된다. 김용균씨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생생하고 또 먹먹하다.

외관이 화려하고 웅장한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지명숙씨를 만나보자. 지씨가 매일 출근하는 곳은 주기장. 쉽게 말해 비행기를 대는 곳이다. 청소에 주어진 시간은 단 20분. 지씨는 좌석을 정리한다. 감독은 “빨리”를 연발한다. 이날은 바닥에 붙은 껌을 떼느라 일이 늦어졌다. 쓰레기를 구겨 넣으니 100ℓ 봉투가 금세 찬다. 그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하루 20차례 이상 청소를 한다. 그래도 이날은 화장실 당번이 아니라 다행이다. 화장실 당번은 종일 1000개가 넘는 변기를 닦는다. 하루에 15시간씩 일한다. 한 달에 연장 근로만 90시간인 경우도 적지 않다. 지씨는 “‘3D(dirty·difficult·dangerous)’ 업종이란 말이 있잖아. 우리는 ‘4D’야. 드림리스(dreamless)까지. 갈 데도 없고 꿈도 없는 거지”라고 한다. 안락한 기내를 위해 숨막히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전날 접수한 소포가 바로 다음 날 도착하는 편의는 어떻게 가능할까. 각 우체국이 접수한 택배, 소포 등을 지역별로 내려보내는 우편집중국에서 밤새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중원씨는 밤 10시에 출근해 아침 7시에 퇴근하는 일상을 7년째 반복하고 있다. 그는 “낮엔 시든 배춧잎처럼 몽롱하고 말도 잘 안 나온다. 야간 노동은 2급 발암물질”이라고 표현한다.

방송 작가들은 팀으로 일한다. 팀에서는 신입 작가를 ‘막내’라 부르며 밤낮없이 일을 시킨다. 새벽 3시에도 섭외자를 찾으라고 하고 수시로 간식이나 커피를 주문한다. 방송작가 최지은씨는 “프로그램 진행자의 커피를 담당한다. 나도 이름이 있는데 날 부를 때 ‘야, 커피’ 이런다”며 울분을 토한다. 하하 호호 웃으며 보는 TV 프로 뒤에도 열악한 노동이 숨어있다.

지하철 선로엔 전압 1만5000V 전류가 흐른다. 안전 점검과 선로 보수작업 등은 지하철이 운행되지 않는 새벽 1~4시에 이뤄진다. “01시20분부로 단전했습니다”라는 방송이 나오면 직원들은 선로로 내려간다. 서울교통공사에서 일하는 한창운씨는 “지하철은 환풍구가 도로 밖으로 나 있어서 미세먼지와 매연을 역사로 빨아들인다. 지하 자체가 유해환경”이라며 답답해한다.

고속도로 위에서 24시간 순찰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이용자에게 자신을 “한국도로공사 직원입니다”라고 소개하도록 교육받지만 실제론 외부 용역업체 소속이다. 김용균씨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기업이 위험하고 힘든 일을 간접고용을 통해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 수많은 ‘김용균’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야간 노동자의 삶과 권리는 우리 삶과 직결돼 있고, 이들의 위태로운 삶이 결국 우리 삶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시대 ‘김용균’과 손잡게 할 책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