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봄
문병란
하룻날 햇볕이 봄인 양하여
양지쪽에 재빨리 망울 튼 진달래
잘못 불어온 거짓 봄바람에
철없이 피어나
한들한들 나부끼고 있다.
거짓 봄이 우리를 들뜨게 하고
거짓 봄바람이 살랑이며 간지럼 먹이고
거짓 햇볕이 귓가에 속삭이고
성급하게 고개 드는 온갖 꽃들
온 세상 가득히
거짓 봄바람이 불고 있다.
춥던 겨울이 가고
햇살 다수운 날이 오니
밖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아
이 바람은 참 봄바람이 아니다
이 꽃들은 참 꽃이 아니다
거짓 바람에 속아 날뛰며
거짓 웃음에 홀려 혼을 뺏길 때
잘못 피어난 꽃들은 서리에 시들고
거짓 웃음은 다시 비수로 바뀐다.
마음 늦추고 핫옷 벗고
희희낙락 웃으며 즐거워할 때
잠깐 눈을 가린 거짓 꽃
웃음 속에 햇살이 다사로워도
사람들아 사람들아 들뜨지 말아라
아직은 결코 봄이 아니다.
- 문병란 시집 <화염병 파편 뒹구는 거리에서 나는 운다>(실천문학사,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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