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 못 가는 나라, 그곳엔 누가 살까
[서평]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대북 쌀 지원’ 얘기만 나오면 한쪽에서는 어김없이 ‘쌀을 군사용으로 쓴다’는 의혹이 나온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정말 그런가’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얘기가 왜 나왔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교통 사정이 여의치 않은 북한. 항구에 쌀이 들어오면 그걸 실어나를 대형트럭이 없어서 군용트럭을 쓴다는 거다. 우리로 치면 ‘대민지원’ 같은 건데, 그걸 보고 남한 언론은 쌀을 군대로 가져간다고 말을 만든다는 거다.
‘세상에서 오직 한국인만 갈 수 없는 나라’ 북한. 우리에게 오해와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땅. 그곳에 다녀온 한 ‘민간인 아줌마’의 이야기가 ‘쌀 지원’에 대한 내 의심을 풀어줬다. 재미동포 음악가 신은미씨가 쓴 북한 여행기인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2011년 10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40여 일간 평양부터 백두산까지 북한 땅 곳곳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가 생생하다.
저자는 ‘여는 글’에서 스스로를 자유당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외할아버지와 한국전쟁 참전군인인 아버지 아래서 자란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남편의 뜻에 따라 처음 북한 여행을 마음먹었을 때도 “우리와 얼마나 다를까” 하는 호기심과 교만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어쩌면 이토록 똑같을까” 하는 동질감과 통일에 대한 염원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이 책 속에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평양으로 가는 고려항공 비행기에서 북한 승무원을 만났을 때는 막연한 두려움에 떨던 저자가 나중에는 ‘북한에 두고 온 딸과 조카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바뀐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자는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에서 이웃의 표정을 읽고 동포의 마음을 느꼈다. 알콩달콩 연애문제를 고민하고 가족을 돌보고 자식을 키우며 ‘우리’와 똑같이 사는 ‘그들’을 만나면서 그동안의 오해와 무지를 뼈아프게 돌아봤다고 한다.
키가 150cm밖에 안 되는 아들 같은 군인들을 보면서, 전쟁과 가난이라는 현실 앞에 가슴 아파했다. 저자는 그런 반성과 다짐의 과정을 남기고 싶어서 여행이 끝난 뒤 뒤늦게 글을 쓰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한계(?)라 할 만한 부분도 있다. 저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난한 나라”라고 북한의 가난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나 여전히 동정 또는 시혜의 눈길로 그들을 보고 있다는 것이 가끔 비쳐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재미와 의미를 깎아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KOREA’지만 오직 한국인만 갈 수 없는 나라. 저자가 그곳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국적이 ‘미국’이었기 때문이었다. 멀리 이국 땅에서 늘 그리워하던 조국의 ‘새로운 반쪽’을 발견하고, 비로소 분단이라는 현실을 아프게 받아들이게 된 저자. 그의 따가운 고백이 통일도 평화도 이제 고리타분하게만 여기는 우리의 머릿속을 울리고 때린다.
*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신은미 씀, 네잎클로바 펴냄, 2012년 11월, 383쪽, 1만7000원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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