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831 [강연 사진] 장충동작은도서관 글쓰기 강의 장충동작은도서관 글쓰기 강의2025. 11. 7. / 21. 2025. 12. 19. 강연 및 방송 이력(2025. 12. 현재) [강연 이력]2025. 11. 7. ~ 21. 장충동작은도서관 글쓰기 강의2025. 9. 3. 전남 함평 해보중학교 민주시민교육2025. 7. 3. 한국노총 공공연맹 선전학교 글쓰기 교육2025. 6. 11. ~ 9. 23. 성북 청년 구술생애사 프로젝트(우리들의성장이야기) 2025. 5. 29.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수협중앙회지부 분회장 노동교육2024. 12. 28. 충남기업교육센터 구술생애사 특강 2024. 9. 6. 인천 학익고등학교 특강(학익고)2024. 8. 13. 2024 대한민국 양성평등포럼 서포터즈 발대식 특강(여성가족부)2024. 7. 6. 대구경북 커뮤니티저널리즘 스쿨(대구경북언론노동조합협의회 등)2024. 6. 26. 노동조합에 힘이 되는 글쓰기(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2024. 6. .. 2025. 12. 19. '밥 한 끼'가 대체 뭐길래... 엄마가 떠나며 남긴 교훈 [하늘을 짓는 여자] 2016년, 막내아들 김청민이 유희에게 집을 선물했다. 인천 신도시에 있는 넓은 평수의 아파트였다. 집을 고를 때 생각한 1순위 조건이 ‘주방이 커야 한다’였다.“엄마가 허름한 빌라에 살 때, 음식하기가 너무 좁잖아요. 아무리 (밥 연대) 하지 말라고 해도 안 할 사람이 아닌 걸 아니까(웃음), 새 집 구할 땐 주방 크기 위주로 봤어요.”(김청민)“‘어디 가자’ 그러더니 막내가 차를 몰고 가는데, 엉뚱한 쪽으로 가. 그러더니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네? 아들이 문 앞에서 춤을 추더니 이걸(카드키) 주는 거야. ‘엄마 여기다 대보세요.’ 그때까지만 해도 어안이 벙벙했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내가 얼마나 쇼크를 받았는지…. 이렇게 해놓고(가전제품까지 다 갖춰놓고) 춤을 추는데 내가 얼마나 울었겠어.” .. 2025. 11. 7. 노점에서 자란 꼬마 '짱구', 엄마의 평생동지가 됐다 [하늘을 짓는 여자] 초여름 햇살이 뜨겁던 날. 땀을 흘리며 산길을 오르는데 구성진 ‘트롯’ 가락이 들려온다. 잠깐 귀를 의심했다. 눈앞에 보이는 거라곤 ‘무덤’뿐이었으니. 여기는 모란공원묘지 민족민주열사묘역. 이름만으로도 경건하고 엄숙한 무게감에 압도되는 곳인데, 어째서. 발걸음을 옮길수록 음악 소리는 더 커진다. 바쁘게 손을 놀리는 사람들이 몇몇 보인다. 그리고 트롯 가락이 울려퍼지는 큰 앰프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구나. 유희의 무덤이다.모란공원묘지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있는 유희의 묘소 ⓒ셜록 지난 6월 18일 유희 1주기 추모제. 앰프에서 나오는 노래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유희다. 공연 때 녹음한 음원을 틀어뒀다. 그녀가 생전에 말했단다. 자기가 죽은 뒤 사람들이 무덤에 와서 우는 게 싫다고. 그녀는 자기 장례식에서도 울.. 2025. 11. 6. '선한 마음'의 연결... 세상을 돌아가게 만든 한 사람 [하늘을 짓는 여자] 유희의 ‘카리스마’는 유명했다. 밥차를 가로막는 경찰이나 용역들 앞에선 울분을 토하며 맞서고 싸웠다. “국통을 집어던지고 싶은 적도 많았다”고 할 정도로 뜨겁게. 유희는 투쟁 현장의 ‘큰언니’였다. 노동자들에게 쓴소리 하는 경우도 많았다. 주눅이 들어 있는 이들 앞에서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투쟁을 독려하기도 하고, 어설픈 모습을 보이는 이들에게는 “그 따위로 할 거면 집어치우라”는 호통으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하기도 했다. 불같은 성격만큼 정도 많고 눈물도 많았다. 특히 단식투쟁이나 고공농성 등 극단적인 투쟁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유희는 속상함과 안타까움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참사 유가족들 볼 때. 세월호 가족들의 농성 현장에도 (밥묵차가) 많이 갔어요. 자식 잃은 엄마가 노숙농성을 하는데 천막도 .. 2025. 10. 31. 할매들 손에 꽃이 피었다... 춤추며 싸우는 '언니'의 힘 [하늘을 짓는 여자] 명동 거리에 수상한(?) 냄새가 난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로 붐비는 ‘호텔’ 앞 거리. 풍경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구수한 냄새다. 거리 한쪽에는 큰 현수막이 둘러쳐진 천막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큰 냄비에서 ‘옥수수’가 맛있게 익어간다.‘길 위의 목사’로 불리는 최헌국 목사가 전날 경북 문경까지 가서 직접 따온 옥수수다.“이분이 몇 년 전부터 항상 노동자 투쟁 현장들을 알려달라고, 옥수수 보내주겠다고 전화를 주셨어요. 너무 고마운 거죠. 그래서 옥수수 딸 때라도 일손도 돕고 막걸리도 한잔하려고 제가 직접 가거든요. 유희 쌤 계실 때는 유희 쌤께도 늘 옥수수를 보내주시던 분이세요.”(최) 명동 세종호텔 앞 도로, 10미터 높이 철골 구조물 위에서는 세종호텔에서 해고된 요리사 고진.. 2025. 10. 30. 모두를 먹여살린 ‘욕쟁이언니’… 그녀의 마지막 기도 [하늘을 짓는 여자] 사회운동에 있어서 올바른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다. 그리고 그냥 ‘사람 좋은’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 두 가지를 함께 갖추기는 어려운 일이다. 임정득이 기억하는 유희는 ‘운동적 올바름’과 ‘사람 좋음’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었다. 그래서 “매력 있는” 사람.“언니를 현장에서 만나면 항상 음식을 챙겨주셨어요. 집에 가서 아이 먹이라고 빵 같은 것도 주시고. 저뿐만 아니라 현장의 문화활동가들에 대한 애정이 되게 깊으셨어요.”(임)유희의 관심사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먹이고 챙기는 거였다. 특히 자신처럼 노래와 예술로 사람들을 응원하는 문화활동가들을 사랑했다. ⓒ유희 페이스북 유희가 사랑한 문화활동가 중 한 사람이 신유아다. 현장예술활동가로, 기획자로 오랜 세월 노동자 투쟁 현장을 지켜온 신유아. 그녀가.. 2025. 10. 24. 탄핵광장에 K-POP이 있듯 그 시절 '유희'가 있었다 [하늘을 짓는 여자] “갑자기 되게 보고 싶네. 정말.”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그가 말했다. 살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의 시선이 머무는 허공 어디쯤에서, 누군가 그 말을 듣고 있다는 듯이. 지난여름 어느 날 저녁, 민중가수 박준을 만나러 명동성당 앞으로 갔다. 비정규직·해고·산재 노동자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 위한 거리공연. 수십 년간 그 자리를 지켜온 그는 그날도 여전히 마이크 앞에서 서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박준이 유희를 처음 만난 곳도 바로 이곳, 명동성당이었다.“팔구십 년대 명동성당은 ‘데모의 메카’ 아니었습니까. 당시에 저는 명동성당 청년회 활동을 쭉 했어요. 88올림픽 전후로 빈민운동이 워낙 크게 일어났고 노점상 투쟁도 명동성당으로 오셨으니까, 그때 명동성당에서 ‘누.. 2025. 10. 23. "그녀의 밥을 먹으면 이긴다" 전설에 숨은 진짜 의미 [하늘을 짓는 여자] 배우 김의성은 자신의 SNS를 통해 시민들에게 밥차 모금을 독려해준 데다, 추가로 필요한 돈까지 선뜻 내놨다. 700만 원이나 되는 큰돈이었다.“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제가 뭘 자랑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고, 사람들이 (밥묵차를) 많이 아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김의성 발언, 뉴스타파 ‘뉴스포차’ 2017년 3월) 드디어 밥차가 마련됐다.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자’라는 이름은 ‘밥묵차’로 바뀌었다. 2017년 3월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밥묵차 ‘개솥식’을 열었다. 밥묵차는 못 가는 곳 안 가는 곳 없이 전국을 누볐다. “춥고 외로운 투쟁을 해본 사람 치고, 유희 동지의 밥을 안 먹어본 사람이 있을까요?”(김진숙)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시민들의 십시일반 정성 덕분에 드디어 밥차를 장만했다.. 2025. 10. 17. 집회장에 나타난 검은 세단... 수상한 차와 고상한 '밥' [하늘을 짓는 여자] 눈앞으로 북한강이 흘렀다.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의 한 찻집. ‘두 여인’의 발길이 자주 향하던 곳이다. 테이블엔 역시나 두 여인이 좋아하던 대추차가 놓였다. 강가에는 두 사람이 종종 걸음을 맞춰 걷곤 했던 산책로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 내 앞에는 한 여인만 앉아 있다는 것. 우리는 두 여인의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공간에 앉아, 지금은 만날 수 없는 한 여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의 이름은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를 이끌며 춥고 배고픈 노동자들의 곁을 지킨 유희. 또 한 여인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묵묵히 그녀의 곁을 지킨 성미선이다.들꽃 앞에서 성미선(왼쪽)과 유희. 2022년 ⓒ유희 페이스북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그해 마지막 날 밤에 두 여인은 처음 만났다. 세.. 2025. 10. 16. 창문 넘어 탈출한 동생... "그 고집을 어떻게 막아" [하늘을 짓는 여자] 유희는 콜트-콜텍 해고자들처럼 “라면 물 끓일 형편도 안 되는” 노동자들을 찾아다녔다. 카페 운영에 봉사단 활동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내 자식들 먹는 것만큼 너무 이쁘고 너무 고마운” 마음에 농성장 밥 연대를 이어갔다. 자신이 지은 밥을 “정말 감사하게 먹는 그 마음이 눈에 보여서” 연대를 멈출 수가 없었다. 아들은 그런 유희에게, 시샘인지 칭찬인지 걱정인지 모를 말도 했다. “엄마는 밥차 음식 할 때만 눈에서 빛이 나. 그래놓고 음식 다 하고 나면 아파 죽겠다고 병원에 물리치료 받으러 간다 그럴 거면서.” 유덕희네 동네 사람들도 유희의 밥을 안 먹어본 사람이 없다. 유희는 소문난 ‘큰손’. 음식을 모자라게 하는 법이 없었다. 집회 현장이나 농성장에 밥 연대를 하고 음식이 남으면, 유덕희.. 2025. 10. 2. “마이크 잡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부평스타’였지” [하늘을 짓는 여자] “(인터뷰 섭외) 전화 받은 날부터 지금까지 눈물바람 하는 거야. (인터뷰) 할까 말까 많이 생각했고, 밤에도 잠을 못 자고…. 유희는 내 가슴이에요. 가슴이 뚝 떨어져 나간 것 같아.” 유덕희의 눈물 앞에 고개가 숙여졌다. 죄송한 마음을 뭘로 다 표현할까. 인천 효성동 오래된 골목길을 지키고 있는 유덕희의 미용실. 내 침묵과 그녀의 흐느낌이 작은 공간을 채웠다. 그녀의 울음소리를 듣는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18일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모란공원묘지에서 열린 ‘유희 동지 1주기 추모제’. 나는 일찌감치 도착해, 추모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지자, 묘역 아래에서부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유희야-, 유희야-. 네가 왜 여기 있어야 돼. 네가 왜 여기 있어.” 추모.. 2025. 9. 26. 이전 1 2 3 4 ··· 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