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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규·박준영 인터뷰 1] “침묵 않는 연대의 힘, 재심사건 숨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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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6797만8000원. 시작부터 무슨 돈 얘기냐고? 박상규 기자와 박준영 변호사가 포털사이트 다음 스토리펀딩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를 통해 모금한 후원금이다. 1만8043명의 시민들이 만들어낸 기적의 돈. 스토리펀딩 역사상 후원금액도 최고, 후원자 수도 최고다. 백수기자 박상규와 파산 변호사 박준영이 재심 프로젝트로 힘을 모은 지 약 2년. 그들은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아래 김신혜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아래 익산 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아래 삼례 사건)을 세상에 알리고 사건의 재심을 이끌어냈다. 삼례 사건과 익산 사건은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고, 김신혜 사건은 1심에서 재심을 개시했지만 검찰이 항고해 다시 고등법원에서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는 중이다. 사건의 주인공들은 사건 당시, 어리거나, 지적 장애가 있었고, 많이 배우지 못했으며, 가난했다. 그들은 변호인이나 어른들의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살인범’으로 만들어져갔다. 박상규 기자와 박준영 변호사는 그들을 억울함에서 구해냈다. 그리고 ‘진짜 기자’가 되기 위해 언론사에 사표를 쓴 박상규 기자와 ‘제 돈 들여가며’ 진행한 재심 프로젝트로 파산 위기를 맞은 박준영 변호사는 1만8043명의 시민들이 구해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17일 <지연된 정의>(후마니타스/ 2016년)를 함께 출간했다. 스토리펀딩 연재를 바탕으로 더 다양하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책이 나오기 전부터 인터뷰를 추진했지만, 너무 바쁜 두 사람 때문에 일정을 잡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정의가 지연돼서는 안 되듯이, 인터뷰도 더 이상 지연될 수 없었다. 결국 1월 6일, 서울 삼성동 인터파크 사무실에서 박상규 기자와 박준영 변호사를 만났다. 두 사람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http://bimage.interpark.com/milti/renewPark/evtboard/20170118094712163.jpg) “수사기관-사법부 공동정범... 모두 책임 물어 자정능력 키워야” Q 이미 스토리펀딩을 통해 <지연된 정의>의 글들을 일부 먼저 읽은 분들이 계십니다. 스토리펀딩 당시에 비해 어떤 새로운 내용들이 들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상규 : 조금 극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했어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한 변호사가 얼마나 처절한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죠. 그리고 하나하나 사건의 의미에 대한 박준영 변호사의 해석을 새로 써넣었고, 세 사건이 왜 벌어졌는지, 사법부와 우리 사회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새로 담았죠. Q 박준영 변호사님은 비슷한 시기에 <우리들의 변호사>라는 에세이집도 출간하셨습니다. 어떤 취지로 언제부터 준비해서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준영 : <지연된 정의>와 <우리들의 변호사>가 같이 잘 팔려야 됩니다.(웃음) 두 권을 세트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당초에 책 두 권을 동시에 낼 계획은 없었는데, 서로 결이 다른 두 권의 책이 같이 나오면 둘 다 잘 팔릴 거라는 무모한 생각을 해버린 거죠.(웃음) ‘글은 사람이 쓰지만 편집은 신이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편집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기존에 SNS에 쓴 글, 강연이나 인터뷰 때 이야기한 것들을 결합을 시켜서 제 생각을 담아내봤습니다. Q 개인적으로 그동안 저는 법조인들의 글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전문적인 글, 법원 담장 안에서만 유통되는 언어들이 너무 많아서 그랬는데요, 두 권의 책에서 박준영 변호사의 글을 보면서 그런 선입견을 많이 씻어냈습니다. 박상규 : 박준영 변호사는 예전부터 글을 잘 쓰고 싶어 했어요. 흡수가 굉장히 빨라요. 좋은 글을 보면 자기화 시키는 것이 굉장히 빠르다는 거죠.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고 해야 하나?(웃음) 박준영 : 신이 한 편집 덕분이에요.(웃음) 굉장히 건방진 소리지만 제가 글을 못 쓰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거든요. 근데 그 생각이 확 무너지더라고요. ‘글이라는 게 이렇게 쓰는 게 아니었구나.’ 모든 건 모방에서 시작되지 않습니까. 박상규 기자 블로그를 하루에도 수십 번 들어갔어요. 많이 보고 배웠죠. Q 재심이 필요한 사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지연된 정의>에 소개된 세 사건의 경우 ‘아 이 사건은 내가 맡아야겠다’라고 결정하게 된 순간이 분명 있었을 겁니다. 그 결정을 할 때 가장 핵심적으로 고려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박준영 : 재심 청구는 한 번 기각되면 동일한 사유로 다시 청구할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의 기회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히 있을 때 청구해야 돼요. 당사자가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그냥 원이나 풀어줘야겠다고 청구하는 게 아니거든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가능성입니다. 당사자의 억울함이 전제가 돼야 하고, 그 억울함이 완전히 드러나야 됩니다. 두 번째는 욕심입니다. 제가 대단히 도덕적인 사람이거나 무슨 이 시대의 의인(義人)이라면 모르겠지만, 저는 아주 평범한 인간이거든요. 제가 이 사건의 판결을 뒤집었을 때 제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몇 년 동안 사건에 매달릴 수가 없어요. 박상규 : 저는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 솔직한 얘기들도 많이 해줄법한데, 박준영 변호사가 저한테 ‘우리 이거 하면 성공해!’ 이런 얘기는 한 적이 없어요.(웃음) 대신 ‘이 사건이 해결되면 우리 사회가 뒤집어질 거다’ 하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저랑 일할 때는 정의로움을 굉장히 강조했어요. ![](http://bimage.interpark.com/milti/renewPark/evtboard/20170118094854962.jpg) “제도화된 국가 시스템만이 약자를 차별한 게 아니다” Q 스토리펀딩을 통해서 큰 관심과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 사건들이 ‘불쌍한 사람들이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건’ 정도로만 기억돼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건들 속에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숨겨진 1인치’가 있다면 어떤 지점인가요? 박준영 : 삼례 사건을 보시면, 피해자, 유가족, 진범까지 재심에 도움을 줬거든요. 그리고 익산 사건에는 황상만 반장이라는,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진실을 위해 싸워준 경찰관이 계시죠. 우리가 함께 뭉쳤기 때문에 재심이 가능했거든요. 각 사건마다 연대의 힘이 작용했습니다. 침묵하지 않고 나서줬다는 거죠. 그것이 바로 이 사건들에 숨어 있는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박상규 : 제도화된 국가 시스템만이 약자를 차별한 게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어요. 서울은 잘난 사람들의 세상이죠. 체에 걸러진 사람들의 세상. 여기 있으면 진짜 어려운 사람들이 안 보여요. 저희 책을 읽은 사람들 중에 ‘어떻게 사람을 안 죽여놓고 죽였다고 자백할 수가 있느냐’ 의심하는 사람들이 꼭 있어요.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이 사건의 당사자들은 감정을 앞세우고, 조리 있게 말도 못하고, 그런 사람이었단 말이죠. 그런 사람들은 언론을 찾아가도 무시만 당해요. 우리 모두가 우리보다 아래 계층을 무시하고 차별해왔고, 그 안에서 이런 억울한 사건들이 발생했다고 생각해요. Q 책을 보면 정의를 지연시킨 공범들이 여럿 보입니다. 경찰, 검찰, 법원, 혹은 허점 많은 법률과 관행을 손 놓고 보기만 하는 입법부나 행정부. 아니면 그 뒤의 보이지 않는 힘이나 우리 사회의 아주 오래된 차별의 벽까지. 그 공범들 가운데 주범은 누구(혹은 무엇)라고 생각하시나요? 박준영 : 어느 쪽의 책임이 크고 작다고 논할 수 없다고 봐요. 공동정범이라고 봅니다. 그래야 해결책이 나오거든요. 경찰 수사, 검찰 수사, 1, 2, 3심의 재판까지 사법 절차가 있잖아요. 부족한 것은 벌충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기 위한 절차인데,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잘못된 게 더 견고화 되고 부족한 것은 은폐돼요. 그 이면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게 있어요. 이런 사회에서 책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또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게 만드는 거예요. 모두의 책임을 물어서 자정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익산 사건, 삼례 사건에서 진범이 잡혔을 때 영장 기각하고 무혐의 처분 내린 사람들, 지금 다 잘나가지 않습니까? 그들이 잘못된 수사를 바로잡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내가 한 짓이 아니다.’ 바로잡는 것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모르는 거죠. 그게 가장 아쉬워요. 박상규 : 재심 재판 과정에서, 과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고요. 서로가 계속 책임을 미뤄요. 심지어 법원은 피해자한테 책임을 돌려요. ‘우리는 최선을 다했으나 피해자가 자백하는 바람에 어쩌고저쩌고.’ 우리나라에는 특히 시국사건들을 비롯해서 법원이 잘못된 판결을 내린 경우가 많았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한 번도 징계를 받거나 처벌을 받은 경우가 없어요. Q 저도 정말 답답했던 것이 ‘왜 그들은 처벌받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그냥 회사원들도 일을 하다 잘못을 저지르면 상벌위원회에도 불려가고 징계도 받고 하는데, 왜 우리 사법부 내부에는 그런 것조차 없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박준영 : 조직의 권위를 너무 중시하는 것 같아요. 잘못하면 인정하고 사과하면 돼요. 그러면 국민들도 용서할 수 있고 관용을 베풀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조차 안 하다 보니까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거예요. 자신들이 무결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어요. 자신들의 결함을 인정하는 것이 조직 전체의 과실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도 같고요. 조직에 누를 끼친다는 생각, 사법부의 권위를 떨어뜨린다는 생각. 법적 안정성이라는 관점이죠. Q 그렇다면 지연된 정의를 복구하려면 우리 사회의 어느 지점부터 손을 대야 할까요? 박준영 :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충분히 분석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나라 판사들이 맡고 있는 사건의 수가 엄청납니다.(2012년 판사 1인당 연간 처리 사건 수는 593건. 대법관은 1인당 2938건. 대법원 자료. <지연된 정의> 인용. - 기자 주) 그런데 판사, 검사를 한 사람 늘리는 데 드는 비용도 크거든요.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죠. 분쟁을 줄이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사회적 다툼이 무조건 고소, 고발로 이어지는 게, 우리 스스로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것 아닌가 냉정하게 생각해봐야 돼요. ![](http://bimage.interpark.com/milti/renewPark/evtboard/20170118095028602.jpg) ☞ 2편으로 이어집니다.([박상규·박준영 인터뷰 2] “변방의 이야기로 중앙을 불편하게 하고 싶었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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