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이 하는 건, ‘사람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인터뷰] 노동자협동조합, ‘일과나눔’과 ‘함께일하는세상’
10․26재보선 결과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됐다. 박원순 시장은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절 ‘소셜 디자이너’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것은 ‘공동체’에 대한 그의 관심과 노력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박원순 시장의 당선은 1990년 후반 이후 자리 잡은 생활협동조합운동을 비롯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으로 협동조합운동이 떠오르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신용조합, 소비조합, 주거자조합 등 협동조합의 여러 형태 가운데 ‘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노동자협동조합이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종자’ 삼아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는 노동자협동조합. 생산과 소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경제생활의 두 축인 만큼 노동자협동조합이 자리를 잡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지난 10월 24일, 노동자협동조합의 ‘성공사례’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두 곳을 찾아 이야기를 들어봤다.
먼저 찾아간 경기도 남양주시 ‘일과나눔(대표 정승화)’에서 엄재영(44) 사업운영본부장을 만났다. 2009년 10월에 설립된 사회적 기업인 일과나눔은 2005년에 설립된 남양주시 자활공동체 1호, ‘함께일하는세상’ 남양주지점을 기반으로 남양주 지역에 있는 여러 자활공동체들이 모여 만든 곳이다. 자활공동체가 모여 만든 노동자협동조합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기업의 모습을 하고 있다니, 개념이 좀 어렵다.
“생소할 거예요. 시작은 자활공동체였죠. 자활공동체는 삶의 기반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공동사업체거든요. 그런데 어떤 형태가 구성원들한테 가장 바람직하고 그들의 삶을 뒷받침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속에서 찾은 게 협동조합이에요. 그래서 협동조합 형태로 창업한 겁니다.”
일과나눔에 함께하고 있는 자활공동체는 모두 네 곳. 가장 먼저 만들어진 함께일하는세상 남양주지점(청소용역)을 비롯해 반디농장(2006년, 유기농 유정란 생산), 돌보미(2007년, 돌봄서비스), 길건축(2007년, 주거복지건축)이 바로 그것이다. 일과나눔의 조합원은 노동자로서 받는 임금 이외에 조합원으로서 이익을 배당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익이 난다고 전부 조합원들한테 배당하는 것은 아니고, 협동조합 사업 적립금과 조합원 복지 적립금, 사회 공동체 사업 지원 적립금 등으로도 쓰인다.
일과나눔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으로, 약 80%가 노동부가 정한 취업 취약계층에 속한다. 올해 초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통해 청소노동자들의 삶이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지게 됐는데, 일과나눔도 청소용역사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니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어떨지 궁금했다.
“청소사업이 상당히 저평가되어 있죠. 용역비에서 급여를 드려야 하는데, 워낙 용역비가 낮게 형성돼 있으니……. 내부적으로 정한 최저임금이 법정 최저임금보다 몇 백 원 높은 정도예요. 저희도 일반업체들과 경쟁을 하고 있는 거라서 참 어렵죠. 그래도 상대적으로 조건이 좋아요. 올해 도서관 청소용역을 새로 맡았는데, 원래 일하던 분들을 그대로 고용승계 해서 30만 원 정도 월급을 인상해드렸죠.”
요즈음 일과나눔은 협동조합 컨설팅을 받고 있는데, 최근에 노동자들에게 만족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단다. 전체적인 만족도는 높은 편이었지만, 조사 항목 가운데 임금을 포함한 복리후생 만족도가 가장 낮았다. 단순히 보면 뼈아픈 결과 같지만, 임금 만족도가 낮은데도 전체 만족도가 높다는 것은 다른 항목의 만족도가 그만큼 높았다는 말이다. 다른 청소용역 업체들과는 다르게 해고의 위험이 없다는 점이나 평등하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점 등, 돈만큼이나 중요한 다른 ‘무엇’을 채워주고 있다는 얘기라고 볼 수 있다.
일과나눔은 노동자협동조합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기업으로서 주식회사라는 형태를 띠고 있다. 서로 추구하는 것이 다른 ‘협동조합’과 ‘주식회사’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주식회사라는 형태는 사실 저희가 ‘지향’이 아니라 ‘지양’을 하고 싶은 거예요. 실정법상으로 법인격을 갖춰야 해서 주식회사를 불가피하게 만들었죠. 만약 협동조합에도 법적인 자격을 부여하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 주식회사라는 옷은 벗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협동조합이든 주식회사든 경제적 지속이 돼야 하거든요. 돈을 못 벌어도 망하는 거고요, 돈은 벌었지만 협동조합 정신이 사라지면 그것도 망하는 거죠.”
협동조합과 주식회사라는 성격이 혼재돼 있기 때문에 정관도 두 개가 있다고 한다. 상법상 갖춰야 할 주식회사 정관도 갖춰두고, 또 내부적으로는 협동조합의 정관을 가지고 운영한다.
현재 170여 명의 일과나눔 노동자 가운데 조합원은 100여 명. 노동자협동조합은 다른 협동조합보다 가입이 어렵다. 왜냐하면 노동자협동조합의 조합원은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경영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동자협동조합은 다른 협동조합에 비해 까다로운 자격요건을 갖고 있다. 일과나눔 역시 조합원 수를 늘려가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았다.
“교육을 충분히 해야 되는데 다 다른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까 한번 모이는 것도 어려워요. 올해는 신규 조합원 교육을 4월, 9월에 두 번 했죠. 올 초에, 조합 가입 문턱을 낮추자고 결정했어요. 문턱이 높으면 조합원보다 비조합원이 더 많아질 수도 있거든요. 협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민주주의인데, 소수의 조합원만이 일과나눔의 의사결정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문제의식 때문이었죠.”
올해 신규 조합원 교육이라는 이름을 진행된 것은 두 번이지만, 일과나눔의 교육사업은 단순한 내부교육을 넘어서 하나의 사업분야로 발전했을 정도로 알차다. 청소사업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건물위생관리 교육을 비롯해, 자활공동체의 경영교육과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는 단체를 위한 교육, 지역 주민들을 위한 시민인문학 교육까지 마련돼 있다. 특히 철학, 문학, 역사, 문화체험, 미디어, 글쓰기 등의 과정으로 지난해 1년 동안 진행한 시민인문학 교육은 일과나눔의 내부교육으로 시작해 지역 사회로 확장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취약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더 취약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고 있는 것이 시민인문학 교육입니다. 원래 노숙인 인문학 강좌부터 시작해서 자활공동체 쪽에 인문학 강좌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주관하는 단체랑 같이 하기도 하고 독자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죠.
취약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재벌들처럼 돈을 많이 벌 가능성은 없어요. 그렇다면 이분들이 일을 잘하려면 무엇이 충족돼야 할까 고민했죠. 해답은 자존감이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자존감을 세우는 거죠. 단지 그냥 누군가에게 고용돼서 일만 하는 부속품이 아니라 내 삶을 위해,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주체의식을 갖게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하다가 인문학 교육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자존감이라는 말이 확 와닿았다. 그러면서 앞서 얘기한 일과나눔 노동자들의 만족도 설문조사 결과가 떠올랐다. 비록 급여가 넉넉하지는 않지만 일터에 대한 전체적인 만족도가 높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안정된 일자리와 인간적인 관계, 그리고 자신을 알아가게 하는 인문학 교육을 통해 노동자들의 ‘자존감’을 높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해에 시민인문학 교육을 1년 동안 매주 했어요. 올 초에는 ‘영화로 보는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3개월 정도 그 후속교육을 하기도 했죠. 30여 명이 참여했는데 내부 노동자들도 있고 지역의 일반 시민 분들도 있었어요. 시작은 내부교육이었지만 그걸로 끝내지 말고 시민교육으로 넓혀가 보자고 시도해본 거죠.
평일에는 하루 종일 육체노동 하고 나서 저녁 7시에 수업을 듣는 거예요. 9시에 끝나는데, 거의 야학이에요. 그걸 1년 동안 한 거예요. 주변에서는 ‘그게 가능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해냈어요. 일끝나고서? 그러니까 모두 뿌듯한 성취감이 생기는 거죠. 또 자존감도 생기고. 사람들한테 에너지가 생기는 걸 보면서 저한테도 덩달아 에너지가 생겼어요. 앞으로는 상시적인 ‘시민인문학학교’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협동조합의 정신을 잃지 않으려면 조합원 교육을 강화해야 하지만, 회사로서 이익을 내려면 조합원 교육보다 수익사업에 힘써야 한다. 하지만 일과나눔은 내부 조합원 교육을 교육문화사업이라는 하나의 사업모델로 발전시키면서, 협동조합의 정신을 지키며 동시에 회사로서 수익을 만들어내는 2중의 목표를 이루려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어 찾아간 곳은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함께일하는세상(대표 이철종)이다. 2003년에 설립된 함께일하는세상은 앞서 찾아간 일과나눔의 ‘뿌리’ 격인 노동자협동조합이다. 함께일하는세상 역시 경기도 지역의 여러 자활공동체들이 모여 만든 곳이다. 수원에 본사를 두고 12개의 작은 자활공동체들을 지점으로 삼아 출발했는데, 몇 년 뒤 남양주의 일과나눔을 비롯한 일부 자활공동체들이 독립해서 지금은 다섯 개의 법인체가 함께일하는세상에 남게 됐다. 이철종(38) 대표에게 함께일하는세상의 소개를 부탁했다.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곳이죠. 하지만 정부의 ‘일자리 만들기’하고는 달라요.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못 찾는 것과 노동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다르거든요. 저희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봉쇄된 분들에게 기회를 드리는 거죠.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들에게 ‘비빌 언덕’을 만들어주는 곳입니다.”
함께일하는세상이 만들어진 때는 의류, 건설, 식품 등의 분야에 있었던 노동자협동조합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도 해소되고 노동자협동조합 자체가 원래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철종 대표는 ‘협동조합이라서’ 어려워진 것이 아니라, 그 업종이 이미 사양산업이 돼버리고 큰 경제위기 속에 보호망 없이 노출된 ‘외부요인’ 때문에 어려워진 것이라 생각했다.
“2009년 ICA(국제협동조합연맹) 총회에서 영국의 한 노동자협동조합 활동가를 만났어요. 거기는 30년 된 협동조합인데, 원리주의적으로 모든 수입을 철저하게 사람 수로 나눠서 동일임금을 받습니다. 어떻게 유지되냐고 물으니, ‘사업이 되는 아이템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아주 부유하지는 않아도 조합원들한테 ‘나눠줄 것’이 있는 거죠. ‘협동조합도 결국 비즈니스모델이 잘 잡혀야 자리를 잡는다’라고 나름 결론을 내렸습니다.”
노동자협동조합이 성공하려면, 협동조합의 가치만 내세워서는 안 되고 실질적인 이익을 보장해줘서 조합원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자협동조합은 대개 사업성이 좋은 분야가 아니라, 이른바 3D업종이나 사양산업에서 출발하다 보니 유지가 늘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이 노동자협동조합으로서의 힘을 발휘하는 데에도 약점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현재 함께일하는세상에서 일하는 노동자 200여 명 가운데, 협동조합 조합원은 40명 내외. 앞서 말한 이철종 대표의 고민이 피부로 와닿는 숫자다. 그의 말처럼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협동조합의 가치를 교육하는 활동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어 보였다.
“잘 안 되죠. 실무자들도 월급이 100만 원도 안 돼요. 그런데 협동조합 가입하려면 출자금이 100만 원이 돼야 하거든요. 월 3만 원씩 낼 수도 있지만 90만 원 월급에서 3만 원이면 크죠. 그렇게 큰돈을 내고 협동조합을 해서 가져갈 수 있는 게 있느냐고 물으면, 여기에서 막히는 거죠. 동기부여를 하기 어려운 거예요.”
경제적 문제 때문에 허덕이다 보면 조합원 교육도 뒤로 밀리게 된다. 조합원 수를 늘리려면 일상적인 교육과 지속적인 소통이 있어야 하는데, 협동조합의 운영 자체가 어려워지면 그런 사업을 우선시하기는 당연히 불가능해진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전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협동조합 교육을 했지만 하반기 들어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미뤄져버렸다고 한다. 협동조합만 담당하는 간사를 한 명만 따로 둘 수 있을 정도만 돼도 교육사업은 우선적으로 하고 싶다는 이철종 대표의 말이 참 안타깝게 들렸다.
이철종 대표는 노동자협동조합이 이런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 협동조합 자체의 영역이 넓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생활협동조합과 같은 소비자협동조합들이 노동자협동조합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시장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소비자협동조합이 다루는 상품은 대개 농산품 위주이기 때문에, 이것이 공산품과 서비스상품으로 확장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시장에서는 가치를 지키며 살아남기가 버거워요. 소비자협동조합이 연대와 협동의 정신을 살려준다면 그걸 토대로 노동자협동조합도 성장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 생협 조합원이 한 50만 명 된다고 하는데, 50만의 시장이 열려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시작점이 될 수 있겠죠.”
이철종 대표는 “이제 겨우 10년”이라며 아직 실패를 말할 때가 아니라고 했다. 협동조합의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꼽히는 스페인의 몬드라곤공동체도 지금의 명성을 얻는 데 50년이 걸렸다면서, 함께일하는세상도 50년 뒤에 몬드라곤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느냐고 웃었다. 30년은 돼야 한 우물을 팠다고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여전히 ‘사람을 기다리는 일’에서 희망을 발견한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잔잔히 남았다.
“1년 정도 일하다 나가신 노숙인이 한 분 있어요. 가끔 ‘몇 만 원만 부쳐주세요’ 하고 문자가 왔죠. 사람들은 ‘미련’이라고 했지만 저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죠. 몇 주 전에 얼굴을 뵀더니 노숙인 한 분하고 같이 리어카 행상을 하신다더군요.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하고 가셨어요. 우리가 하는 건 사람을 기다리는 일 같아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 사회 속에서, 사람을 기다려주는 데가 바로 협동조합, 우리가 아닐까 싶어요.”
일과나눔과 함께일하는세상의 모습을 보면서, 노동자협동조합은 다른 협동조합들과 다르게 조합원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훨씬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가까이에서 이렇게 ‘비빌 언덕’이 되려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희망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의 노력이 계속 더해져서 그 언덕이 ‘큰 산’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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