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가 간장 만든 게 죄야?
서울 신촌동에 있는 연세대 동문회관 연회장에서 조리사로 일하는 박율봉 씨는 지난 6월 18일 아침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습니다. 여느 날처럼 출근한 박 씨는 기다리고 있던 경찰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임의동행 당한 것이었습니다. 박 씨의 죄명(?)은 절도였습니다. 그이를 신고한 주방장의 말에 따르면 박 씨가 900밀리리터 간장 통에 육회 소스를 담아 훔쳤다는 것이었습니다. 7월 6일 저녁, 서울 서대문에 있는 서울일반노조 사무실에서 박율봉 씨를 만나 그날 사건의 전말을 들어 보았습니다.
박율봉 씨는 연세대 동문회관 연회장을 운영하는 회사인 한화개발에서만 15년째 일해 온 베테랑 조리사입니다. 육회 소스의 조리법을 규격화시키면 어떨까 고민하던 박 씨는 다른 호텔에서 일하는 후배 조리사에게서 육회 소스 레시피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연구 끝에 6월 17일 테스트용 육회 소스를 만들게 됩니다.
“보통 한번에 15리터 정도 만들어요. 그 정도면 3천 명분인데, 저희 연회장에 1주일에 오는 손님이 3천 명 정도거든요. 자체적으로 새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1주일 사이에 변질되지는 않는지 유통 기한을 알아 봐야 돼요. 그래서 900밀리리터짜리 빈 간장 통에 담아서 회사에서 나오는 서식으로 ‘테스트용’이라고 써 붙여 놨죠. 근데 이걸 1주일 동안 보관할 데가 마땅치 않아서 제 개인 사물함에 넣어 놓게 된 거예요.”
테스트용 소스를 박 씨의 사물함에 넣어 둔 것은 그것을 실제로 조리에 사용하는 소스들과 같이 보관하다가 만약 식약청 감사에라도 걸리면 큰일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통 기한을 알아보려면 소스를 상할 때까지 두어야 하는데, 테스트용 ‘상한’ 소스와 실제로 조리에 사용하는 소스가 같이 보관되어 있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런데 그 순간 주방장이 나타나 박 씨를 절도범으로 몰아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오후 내내 박 씨가 그것을 만드는 것을 옆에서 쭉 지켜봤으면서 말입니다. 실랑이 끝에 박 씨가 먼저 퇴근하자 주방장은 박 씨의 사물함 문을 따고 증거 사진까지 찍어서 경찰에 신고를 한 것입니다. 박 씨는 자신이 만든 간장 한 통을 훔쳤다는, 아니, 유통 기한을 알아보기 위해 사물함에 넣어 두었다는 기막힌 죄로 팔자에 없는 경찰서 출입을 다 하게 된 거죠.
경찰도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박 씨의 진술서를 본 경찰서 형사계장의 첫 마디도 “야, 근데 이게 죄가 되냐? 요리사가 간장 만든 게 뭐가 절도야?”였습니다. ‘강력하고 빠른 처벌을 원한다’는 사측 노무과장의 바람이 무색하게 박 씨는 반나절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도 박 씨는 앞선 진술을 두 번이나 번복해 가며 죄를 만들려는 사측의 억지 때문에 몇 번이나 경찰서에 불려 가서 보강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박 씨의 억울한 고생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인사과에서 그 다음날로 저한테 대기 발령을 내린 거예요. 26일 동안 서소문 본사 사옥에 있는 한 평 반 남짓한 조그만 유리방에 갇혀 있었죠. 9시부터 6시까지 사측 임원들의 조사를 받으면서요. 그런데 이른바 ‘소스 사건’에 대해서는 몇 시간 안 물어보는 거예요. 대신 물어본다는 것이 ‘행사 끝나고 남은 사이다를 마시지 않았냐’, ‘등산 갈 때 주방에서 오이를 가져가지 않았냐’ 하는 거였어요. 황당했죠. 알고 봤더니 그 동안에 제 동료들한테 뒷조사를 싹 해서 꼬투리 될 만한 정보를 억지로 모은 거예요.”
사측은 어떻게든 박 씨에게 징계를 주려고 협박에 가까운 수단까지 다 사용했지만, ‘소스 사건’은 당연히 죄가 될 수 없고 사측에서 물고 늘어진 다른 ‘꼬투리’들도 당연히 죄가 될 수 없어서 박 씨에게는 그 어떤 징계도 내릴 수 없었습니다. 대신 사측에서는 박 씨가 원래 일하던 연세대학교 동문회관이 아닌 멀리 수원에 있는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연회장으로 발령을 내렸습니다.
한 달이 넘게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고 억울한 싸움을 한 박율봉 씨의 진짜 죄는 소스를 훔친 것도 아니고, 사이다나 오이를 먹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화개발의 200여 명 직원 가운데 5명밖에 없는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죄(?)였습니다.
한화개발은 서울프라자호텔과 함께, 외식사업부 아래에 박 씨가 일하던 연세대 동문회관 연회장 같은 대형 연회장과 식당 여러 곳을 두고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한화개발에 노조가 생긴 것은 2004년 5월이었습니다. 외식사업부는 원래 열차 식당 운영을 주로 하고 있었는데 2004년에 그 사업을 정리하면서 150여 명의 노동자들을 명예퇴직 시킨 것입니다. 그때 딱 한 사람이 명예퇴직을 받아들이지 않고 싸우다가 정리해고를 당하게 되는데, 그 일을 겪으며 노조의 필요성을 느낀 28명의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에 가입을 하고 한화개발분회(분회장 안병정)를 설립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측은 프라자호텔에 이미 노동조합이 있다는 이유로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프라자호텔은 외식사업부와 교류도 전혀 없고 체계도 완전히 달라서 다른 회사나 다름없는데 말입니다. 박율봉 씨와 함께 만난 한화개발분회 조합원 홍성윤 씨에게 그때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한화개발분회가 설립되기 한 달 전에 외식사업부에서 프라자호텔 노조에 가입한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보여 달라고 했죠. 그런데 회사에서 제출한 임금 대장이 가짜였던 거예요. 그걸 우리가 밝혀내서 결국 법정에서도 우리 손을 들어 준 거죠.”
2008년 4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기까지 오직 노동조합을 인정받기 위해서 꼬박 4년을 싸우면서 처음에 28명이었던 조합원 수는 5명으로 줄었습니다. 사측에서는 온갖 회유와 협박으로 조합원들을 괴롭혔습니다. 조합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일하도록 발령을 내려 놓고, 조합원 하나가 휴가를 신청하면 다른 조합원들은 그날 휴가를 쓰지 못하게 해서 서로 만나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조합원들이 누구와 통화하는지 전화를 추적하고, 동료들을 이간질해서 왕따를 시키고 조합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했습니다. 조합원들을 협박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족들에게까지 손배소에 가압류가 어쩌고 하는 공문을 보내서 겁을 주었습니다. 그러다 견디지 못한 조합원이 노동조합을 탈퇴하면 다른 조합원들 보라고 바로 그 사람을 진급을 시키면서 달콤하게 꼬드겼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1년 4개월이 더 지난 지금까지 ‘독수리 5형제’처럼 5명이 남아서, 노조를 무너뜨리려고 온갖 황당하고 치졸한 수단을 다 쓰고 있는 사측에 끈질기게 맞서고 있습니다. 이들은 꼬박꼬박 1주일에 한 번씩 집회를 열고 두 번씩 교섭 요청을 하면서, 노조를 인정받고 단체 협약을 맺기 위해 사측과 기나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3년째 한화개발에서 일하고 있는 고려대 교우회관 연회장 조리사 서민석 씨는 사측의 괴롭힘을 이야기하다가 분에 못 이겨 목이 다 메입니다.
“200명 모든 직원들이 우리 다섯 명을 감시하고 있는 거예요. 다른 것보다 그것이 제일 힘들어요. 옆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언제 누가 뭘 가지고 우리를 엮어 넣을지 모르니까 항상 긴장을 늦출 수가 없죠. 하루에 여덟아홉 시간 그러고 일하니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잠자기 전에 술 한잔씩 안 마시면 잠도 안 와요. 그게 지금 5년쨉니다.”
처음 ‘소스 사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가지 신문 귀퉁이에 실리는 황당 뉴스를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어서 헛웃음도 났습니다. 하지만 박율봉 씨와 동료 조합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돌아가는 길에는 도무지 웃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900밀리리터 육회 소스 한 통에 담긴 우리 시대 노동자들의 서글픈 사연은 쏟아 내고 또 쏟아 내도 끝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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