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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봉이냐 죽창이냐

긴 글/칼럼

by 최규화21 2009. 6. 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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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봉이냐 죽창이냐

 

 

  지난 5월 16일 대전에서 열린 민주노총 집회를 두고 한바탕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그날 집회에서 경찰과의 충돌이 일어났을 때, 집회 참가자들이 휘두른 것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엇이냐'가 아니라 '무엇이라 부를 것이냐'에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법원에서는 그것을 ‘만장 깃대’라고 했고, 검찰에서는 ‘죽봉’, 그리고 경찰에서는 ‘죽창’이라고 규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그것을 죽창이라고 부르기로 하면서, 그것을 손에 들었던 집회 참가자들은 한순간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무기인 죽창을 앞길이 창창한 경찰 청년들에게 휘두른 극악무도한 폭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논리로 경찰은 그날 집회 때 연행된 사람들에 대한 구속 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민주노총의 집회를 전면 불허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나아가 민주노총 지도부들에게까지 소환 통보를 하는 등 민주노총에 대한 공격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덩달아 이명박 정부와 보수 언론들도 폭력 시위 때문에 국가의 위상이 떨어진다는 둥 최루탄을 다시 사용해야 한다는 둥 신이 나서 떠들어 댔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들었던 것이 과연 만장 깃대냐 죽봉이냐 죽창이냐 하는 논쟁은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뜨겁게 벌어졌습니다. 대나무 만장 깃대가 죽창이 된 황당한 사연은 분명히 따져야겠지만, 그런데 이런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우리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친 것이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들었던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것을 왜 들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장 깃대든 죽봉이든, 죽창이든, 애당초 그들이 왜 그것을 들고 거리로 나왔느냐 하는 것을 제일 먼저 따져야 합니다.

  그날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유는 택배 노동자 고(故) 박종태 씨의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택배 노동자는 노동자이지만 노동자가 아니기도 한,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입니다. 택배 회사의 말로는 회사와 계약을 맺어서 수수료를 받고 물건을 배달해 주는 '사장님'이랍니다. 실제로 회사에서 월급 받는 노동자들과 똑같이 일하지만 노동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언제든지 회사의 문자 메시지 한 통으로도 해고, 또는 계약 해지될 수 있는 상황이라 더러워도 참고 일했습니다. 그는 보통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150만 원 정도를 벌었습니다. 30원 더 올려 주기로 약속한 택배 수수료를 회사가 오히려 제멋대로 40원 깎아 버리면서 그의 절망은 그가 더 견딜 수 없는 곳까지 치달았습니다.

  그날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정말 죽창을 휘두르고 폭력을 행사했다면, 저는 그것까지 두둔할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경찰이 먼저 시작한 폭력 진압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이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만장 깃대가 되었든 죽봉이 되었든 죽창이 되었든 그들이 손에 쥐고 휘두른 것을 폭력이라 한다면, 그래서 그들을 구속하고 앞으로는 아예 집회 자체를 못하게 만든다면, 고 박종태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 현실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 것입니까? 이 현실의 무거운 힘에 밀려 죽음을 선택한 고인과, 그와 다름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하루하루를 피 말리며 버텨가야 하는 택배 노동자들을 짓누르고 있는 이 거대한 공포는 폭력이 아니라 무엇입니까?

  죽봉이냐 죽창이냐, 경찰이 더 다쳤느냐 노동자가 더 다쳤느냐 하는 것은 법의 영역에서는 꽤 중요한 것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법전에 적힌 법의 영역에서 벗어나 정의의 영역에서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쉽게 눈으로 볼 수 있는 집회 현장의 폭력성에만 눈길을 빼앗겨,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오히려 잘 볼 수 없는 구조적 폭력의 정체를 잊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 그것을 잊는다면 이 논쟁의 결론이 죽봉으로 나든 죽창으로 나든, 그 결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의 뒤에 숨어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사람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경찰이나 보수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집회 현장에서 폭력이 없어지고 평화적이고 선진적인(!) 집회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틈날 때마다 내세우는 법과 질서도 사실은 모두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들의 법과 질서는 과연 진짜 폭력으로부터 우리들의 행복한 삶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지, 오래된 질문을 새삼스레 던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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