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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북잼콘서트] “책·글 없는 세상에서 가수 하고 싶어, 한대수처럼”
![](http://bimage.interpark.com/milti/renewPark/evtboard/2017033117144765.jpg) “글 쓰는 게 싫어요. 다음 생에는 책이나 글이 없는 세상에 가서 가수를 할라 그래요. 한대수처럼.” 김훈 작가의 솔직한 꿈(?) 이야기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고집스러운 이미지 속에 숨어 있던 뜻밖의 유쾌함에 강연장 분위기는 한층 편안해졌다. 엉뚱한 매력(?)을 보여주던 노작가는, 그러면서도 진솔한 표정으로 묵직한 고민들을 던져주기를 잊지 않았다. 3월 30일 서울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북파크에서 제9회 북잼콘서트 김훈 무료 초청 강연이 열렸다. 현장에는 사전 신청을 통해 초청된 300여 명의 독자들이 참석했다. 김훈 작가는 지난 2월, <흑산> 이후 6년 만에 신작 소설 <공터에서>를 출간했다. 인터파크도서(대표 주세훈)가 주최한 이번 강연은 <공터에서>를 통해 못다 한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나눌 수 있도록 마련됐다. 강연의 진행은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씨가 맡았다. 김훈 작가는 15분가량의 짧은 이야기로 ‘강연 속의 강연’을 시작했다. 김훈 작가는 며칠 전 진도 팽목항과 동거차도에 가서 닷새 동안 세월호 인양 작업을 지켜봤다. “매화가 흐드러지고 산수유, 동백은 그 전부터 피었더라”고 말한 그는 “인간의 지옥 속에도 매일매일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걸 보며 ‘자연이란 인간의 슬픔과 고통과는 관련 없이 무자비하게 피었다 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인간의 고통과 슬픔이 더 크고 더 참혹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는, 아들이 살아 있을 때 아침에 찌개를 끓여줬는데 지금은 찌개 끓는 소리가 그립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어머니는, 아이의 목소리와 몸냄새가 그립다고 하고요. ‘인간의 아름다움과 슬픔과 기쁨을 구성하는 것들은 저렇게 사소한 것이구나. 사소한 것의 무서움과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사소한 것들의 중요성, 찌개 끓는 달달거리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알아가는 것에 이렇게 무섭고 참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구나’ 느꼈죠.” 김훈 작가는 또한 “아이가 있었다가 없으니까, ‘있다’와 ‘없다’라는 말이 이렇게 무섭게 다르구나. 건너갈 수 없는 벽이 있구나.”라는 한 유가족의 말을 전했다. 그는 “‘있다’와 ‘없다’의 차이가 인간에게 무서운 운명을 가르쳐준다는 것을 알았다”며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쓰고 하나의 단어 앞에서 경건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소한 것, 구체적인 것, 작은 것들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인간의 일상의 구체성에서 떠난 언어들의 공허함을 처절하게 느끼며 서울로 올라왔다”고 심경을 정리했다.
“세월호 인양 보며, 하나의 단어 앞에서 경건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생각” 이어진 김태훈씨와의 대담은 약 45분간 진행됐다. 대담은 신작 <공터에서> 이야기로 시작됐다. <공터에서>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로, 마씨 집안 사람들이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고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김훈 작가는 제목 속 ‘공터’의 의미에 대해 “자꾸만 허물어지는 가건물, 급조한 시스템과 제도, 그런 것이 무너져 내린 처참한 공터”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텅 빈 것이 주는 ‘열린 의미’에 대해 “새로운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것”이라며 “다만 가건물을 짓지는 말고 영구히 쓸 수 있는 건물, 인간이 머물고 살 수 있을 만한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터에서>에는 김훈 작가 개인의 체험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에 태어난 김훈 작가는 작품 속 아버지 세대의 모습에 대해 “남자들이 유랑하던 시대, 우리 아버지 세대 어른들이 하는 행태, 체취, 몸가짐, 언동들을 보며 합성한 것”이라며, “선대들의 허무감, 무책임, 방종, 절망, 고민들을 보고 뿌리 뽑힌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훈 작가는 “아버지는 늙은 말 같았다. 짐을 지고 일어나지 못하는 말.”이라는 이야기로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동시에 표현하기도 했다. 아버지 세대와 자기 세대의 연결을 끊어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괴로웠다면서 “이제 보면 아버지가 꼭 아들 같아서 용서하고 안아주고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어린 시절 겪은 피난 이야기와 함께 지금의 우리 사회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열흘 동안 피난 갔어요. 걸어가다 기차 타고, 기차 타고 가다가 또 걸어가고. 기차 지붕까지 피난민들이 올라가 있었는데 영하 10도 추위에 떨어져 죽기도 했어요. 기차 객실에는 고관대작들이 타서, 피아노 싣고 강아지 싣고 개집 싣고 갔죠. 저는 그런 조국에서 태어났어요. 그게 우리 조국이에요. 갑질의 전통이 영원한 거예요. 그리고 더 무서운 질문은,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느냐 하는 것. 정말 고통스러운 질문이죠. 아버지 세대가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가난을 물려줬어요. 우리는 그걸 끌어안고 쩔쩔 매며 산 거예요. 그런데 이제 가난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했어요. 가난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죠. 당시의 가난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가난이지만, 지금의 가난은 구조적이고 계층적인 가난이에요. 그건 우리 세대가 만들어낸 죄악이에요.” ![](http://bimage.interpark.com/milti/renewPark/evtboard/20170331171726501.jpg)
“구조적 가난으로 가난의 성격 바뀌어... 우리 세대가 만들어낸 죄악” 관객들과 함께한 현장 토크 시간에는 김훈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와 관객들의 웃음으로 넘쳐났다. 진행자 김태훈씨가 “조금만 더 신비롭게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할 정도. 물론 김훈 작가는 “난 신비롭게 말 못한다. 사실적으로만 한다.”고 웃으며 거절했다. 김훈 작가는 “노동으로서의 글쓰기”와 그 고단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 마음에 맺혀 있는 걸 밖으로 드러내야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슬픈 얘기지만, 매일 매일의 불완전과 미흡함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연 초반 자신을 ‘거장’으로 소개한 김태훈씨에게 “나는 거장이 아니다. 연습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물론 그에게도 작가로서 신나는 순간이 있다. “글을 쓰기 전에 마음에 드는 구상을 만들어놓고, 인물을 설정하고, 문장의 리듬을 어떻게 할지 기획을 할 때는 참 행복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실제로 원고지에 쓸 때는 설계도대로 될 리도 없고 어림도 없다”고 솔직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김훈 작가는 기자 출신의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기자를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일을 시작하던 당시에 대해 “나를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었지, 소설가가 되겠다는 목적은 없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금도 “어떤 소설가가 되고, 미래에 뭘 이루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 않다”며 “그날그날을 살아갈 뿐, 평생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강연 막바지에 나온 김훈 작가의 독서 이야기는 참 흥미로웠다. 먼저 그는 “글 쓸 때 자기가 읽은 책을 들이대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며 “참 무식하고 게으른 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지런한 자들은 피 흘리는 자기 사유로 말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오직 팩트에 접근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며 “소설이나 시보다 사실을 바탕에 둔 역사, 다큐, 르포, 보고서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소방관 시험 문제집이나 항해사 시험 문제집 같은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사실’에 집중하고 ‘생활’을 바탕에 두며 ‘인간’에 주목하는, 김훈 작가다운 독서습관이었다. “정말 재밌어요. 항해사 시험 문제집에는 바다에 파도가 치는데 인간이 어떻게 이 배를 몰고 나갈 것인지가 나와 있어요. 아주 위태롭죠. 칠흑 같은 바다를 헤쳐 나가는 인간의 동작과 육체의 움직임이 거기 다 보여요. 소방관 시험 문제집은 더 재밌어요. 바람이 동쪽에서 불면, 가장 유능한 소방관 부대를 서쪽에 배치해야 해요. 동쪽에는 인명구조대를 진입시켜야 하고요. 재밌잖아요. 인간의 모습이 눈에 딱 보이니까. 이런 걸 독서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미치광이나 하는 거지.(웃음) 제가 소방관을 좋아해서, 서울시 명예소방관이에요. 집에 소방관 옷도 걸어놨어요.” ![](http://bimage.interpark.com/milti/renewPark/evtboard/2017033117185622.jpg) “글 쓸 때 자기가 읽은 책 들이대는 사람은 무식하고 게으른 자” 약 35분간의 현장 토크를 마지막으로 강연은 끝나고, 북파크에서는 김훈 작가 사인회가 이어졌다. 사인회 현장에서는 <공터에서>를 비롯해 <흑산> <칼의 노래> <현의 노래>까지, 김훈 작가의 책 네 권을 품에 안고 있던 전성일(37세, 서울 천호동)씨를 만날 수 있었다. 전성일씨는 강연 시작 1시간 30분에 강연장에 맨 처음으로 온 독자였다. 논술강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김훈 작가의 평소 인터뷰를 보면 항상 구체적인 것에 기반해 있다”며 “그런 부분 때문에 김훈 작가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 얘기들 중에서도 ‘밥벌이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것이 인상 깊었다”고 이날 강연에 대한 소감을 남겼다. 친구와 함께 온 독자 지스쟌(27세, 서울 신림동)씨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강연에서 보는 작가들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해서 참가하게 됐다”고 강연에 신청한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가벼운 농담도 하실 줄 아는 의외의 (김훈 작가) 모습이 재미있었고, 현재에 몰입해서 사시는 모습이 감명 깊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한편, 책을 통한 어울림을 의미하는 ‘북잼(BOOK JAM)’은 저자와 독자의 소통을 돕고자 인터파크도서가 기획한 스페셜 문화공연이다. 콘서트·토크·플레이 등 다양한 형식으로 독자를 만나고 있으며, 다음 제10회 북잼콘서트는 5월 중 개최될 예정이다. ![](http://bimage.interpark.com/milti/renewPark/evtboard/20170331172000793.jpg)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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