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일으킨 ‘대란’의 희생자들
[창간20주년 특별기획] 코로나19가 일으킨 ‘대란’의 희생자들
릴레이 기고 ‘코로나 너머’ ⑦ 최규화 베이비뉴스 기자·월간 작은책 편집위원
마스크 대란, 손소독제 대란, 쓰레기 대란, 트래픽 대란, 콜센터 대란, 실업 대란, 식량 대란….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언론에 등장한 온갖 ‘대란(大亂)’들이다. 그 많은 ‘대란’들 중에는 전국 어린이집이 휴원되자 이슈가 된 ‘보육대란’도 있다.
지난 2월 27일 보건복지부는 전국 어린이집에 휴원 명령을 내렸다. 집에서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는 맞벌이나 한부모 가정의 양육자들에겐 문제가 생겼다. ‘보육대란’이라는 말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의 대책은 ‘어쩔 수 없이 맡겨야 하는’ 아이들을 긴급보육이란 이름으로 돌보는 것이었다.
그 뒤로 계속 어린이집 휴원 명령이 연장되면서, 두 달 사이 사실상 어린이집 휴원은 무력화됐다. 긴급보육으로 등원하는 아이들이 절반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긴급보육 이용률은 지난 2월 27일 10.0%에서 3월 9일 17.5%, 3월 23일 28.4%, 3월 30일 31.5%로 증가했고, 지난달 20일에는 51.8%로 절반을 넘어섰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연장하며 그 강도를 높여가고 있을 때, 전국의 어린이집에는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이미 매일같이 등원하고 있었던 셈이다.
양육자들의 코로나19에 대한 경계심이 점점 약해져서일까. 아니다. 어린이집 휴원 초반에는 연차도 쓰고, 부모, 친척, 이웃 등에게 아이를 맡기며 버티다가, 그 시간이 두 달까지 길어지자 결국 다른 선택지를 찾지 못하고 긴급 보육에 아이를 맡기게 된 까닭이 더 크다고 본다.
감염의 불안을 안고 아이를 긴급보육에 보내느냐, 아니면 일을 포기하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느냐.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일어난 보육대란은 고용단절(경력단절) 여성이 육아기 몇 년 동안 겪는 갈등의 극단적 축소판이다.
그래서 보육대란이라는 표현은 잘못 정해진 것이다. 현 사태는 보육대란보다는 ‘노동’대란으로 인식하고 접근해야 옳다.
정부가 대책으로 내놓은 긴급보육 카드는 실패했다. 현재 보육시스템 안에서 재난 시기 보육을 해결하려 한 시도는, ‘불안하지만 일을 하려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이기지 못했다.
물론 정부가 ‘노동’의 측면에서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가족돌봄휴가’를 권장한 것이다. 가족돌봄휴가는 노동자가 가족의 질병·사고·노령·자녀 양육 등을 위해 연간 최대 10일의 휴가를 쓸 수 있는 제도다. 연차도 끝나고 재택근무도 끝난 양육자들에게 ‘사직’ 이외의 선택지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지만 현황을 보면 아쉬움이 크다.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노동자에게는 물론 기업에게 너무 생소했다. 또 현행 제도 상 ‘무급’ 휴가로 부여하게 되어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일었다. 그러자 정부는 ‘한시적으로’ 하루 5만 원의 지원금을 결정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5일만 하다가, 그 뒤에 10일 모두 지원하는 것으로 확대했다.
우리에겐 이 보다 훨씬 ‘혁명적인’ 안전망을 갖출 기회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총선 당시 무려 3개월 유급의 ‘취학자녀돌봄휴가제’ 도입을 공약했다. 2017년 대선 때도 30일의 ‘유급 가족돌봄휴직제도’ 도입을 공약한 바 있다. 정부 여당이 이 공약들을 반만이라도 지켰더라면, 지금 상황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더구나 정부는 가족돌봄휴가 사용을 ‘권고’했다. 노동자들은 아무 강제력도 없는 권고만으로도 그런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눠졌다. 김영선 고려대학교 한국사회연구소 연구교수는 이것을 코로나19가 불러온 ‘시간의 양극화’라고 표현했다.
정부의 권고만으로도 가족돌봄휴가를 쓸 수 있는 노동자들은 주로 대기업, 정규직에 있었다. 가족돌봄휴가는커녕, 월급이 깎이거나 무급휴직을 당하거나 심하게는 해고통지를 받아야 하는 노동자들은 주로 중소기업, 비정규직에 있었다. 결국 코로나19는 법적 보호가 상대적으로 약한 노동자들에 더 큰 재난으로 다가왔다.
보육현장의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주로 여성, 소규모 사업장 소속, 계약직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지난달 28일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는 약 70곳의 어린이집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이날 노조가 신고한 어린이집들은 원장이 휴원을 명분 삼아 보육교사들에게 해고와 연차 강제 사용, 그리고 ‘페이백(payback)’을 강요했다고 제보된 곳들이다. 페이백은 원장이 교사들에게 급여 일부를 현금으로 반납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정부는 휴원 중에도 어린이집에 인건비를 포함한 보육료를 정상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도 보육교사들은 임금을 빼앗겨야 했다.
시간당 수당을 받는 아이돌보미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들은 엄연히 여성가족부 산하의 건강가족지원센터 소속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다. 이들의 ‘원청’은 다름 아닌 정부다. 코로나19로 아이돌봄 서비스 연계가 대규모로 취소된 상황이지만, 이들의 생계 대책은 어디에도 없다.
코로나19 재난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한국이 그 재난을 놀라운 속도로 통제해 세계의 주목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분명히 보이는 점도 있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안전망을 시험하고 있는데, 특히 노동의 영역에서는 그 안전망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4.15 총선 당시 민중당이 제안했고, 최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에서 논의되고 있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는 의미 있는 아이디어라고 볼 수 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시간의 양극화’로 삶의 안정성이 갈리는 재난 상황에서, ‘일하는 사람’ 누구나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재난은 가장 먼저 약자를 겨냥한다.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재난을 이기는 길이다. 노동의 영역에서도 그렇다. 중소기업이라서, 비정규직이라서, 특수고용직이라서, 여성이라서, 가장 먼저 ‘대란’의 피해자가 돼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의 존재와 노동과 삶의 권리를, 우리는 재난 이후에도 기억해야 한다.
- 민중의소리 2020. 5. 16. https://www.vop.co.kr/A000014883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