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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카다브라 - 이명수

최규화21 2014. 9. 11. 14:03

  

   아브라카다브라 

   - 염소 한 마리 

   이명수 



  세상에, 염소 한 마리가 2만 원이라구요, 수녀님. 

  내가 피우는 일주일분 담뱃값에도 못 미치는 

  어처구니입니다 

  염소 한 마리의 희망 사진전을 보며 할 말을 잃었습니다 


  어린 딸을 염소 한 마리 값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고 팔아 생계를 잇는 나라, 

  그런 세상에 염소 한 마리를 보내면 

  소녀가 몸을 팔지 않아도 되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말이 참말입니까, 스님. 


  어린 시절 외할머니는 허약한 나를 위해 

  해마다 염소 한 마리씩을 보내 주셨습니다 

  염소 덕분에 내가 명줄을 이었으니 

  연(緣)의 밧줄은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 게 사실이군요 

  내가 염소입니까, 

  염소가 나입니까, 


  5주 동안 담배를 참으면 

  내 몸 속에 사는 염소 다섯 마리의 

  희망이 있는 겁니까, 교무님. 

  나를 살려 준 염소가 연기(緣起)의 바퀴가 되어 

  먼 나라 이름 모를 누군가를 살려 낸다면 

  그것이 희망입니다 

  아브라카다브라 


  * 아브라카다브라 : 히브리어로 ‘말한 대로 될지어다’라는 뜻. 중세 사람들은 이 말을 열병을 다스리는 마술의 주문으로 썼다고 함 

  * 염소 한 마리의 희망 사진전 : 수녀, 비구니, 원불교 교무 등 여성 수도자 모임 ‘삼소회’가 에티오피아 여성과 소녀를 돕기 위해 개최한 자선 사진전 


  - <바람코지에 두고 간다> 이명수 시집, 문학세계사, 2014년